한국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자제 요청 언급 없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대북 전단 규제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대북 전단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내고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이번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전단 살포 문제를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접경지역 안전 우려에 관해 “필요하다면 관련 법령 등에 따라 현장에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민간과 소통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달 26일 헌재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위헌 결정 전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전임 정부 당시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입장에선 민간단체들의 전단 살포 행위 자제 언급이 빠졌습니다.
대신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검토’하고 ‘민간과 소통’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 결정의 취지가 최우선 고려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대북 전단이 북한 주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할지에 대해선 향후 남북관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전단 살포 단체들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 민간단체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정책 전환이 이뤄졌다는 관측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내 민간단체들은 헌재 위헌 결정으로 실정법 위반의 부담을 벗고 전단 살포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입니다.
[녹취: 박상학 대표] “여태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우리도 후원자들이 대북 전단 후원을 해줘야 보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후원자 분들이 위축되고 겁 먹었죠. 그랬는데 그런 면에서 엄청 플러스 효과죠.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렸으니까.”
박 대표는 통일부로부터 자제 요청은 없었다며 바람의 방향 때문에 전단 살포 효과가 떨어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조만간 전단 살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형 풍선을 이용한 대북 전단 살포의 원조로 알려진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는 신변보호를 위해 하루 24시간 자신을 밀착 경호하는 경찰들이 있는 상황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만들어지자 전단 살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그러나 전단을 북한으로 보낼 준비는 항상 해왔다며 바람의 방향만 맞으면 언제든 전단을 살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가 긍정적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과 남북한 간 우발적 분쟁에 대한 우려 또한 여전히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한 억제와 대응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은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북한은 그동안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2014년 연천 고사총 사격이나 2015년 서부전선 포격, 2020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은 모두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구실로 일으킨 도발 사건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한국에서 대북 전단 살포가 재개되면 북한이 접경지역에서의 도발 위협으로 대응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관련 단체가 전단 살포를 강행할 경우 이걸 놓고 특히 전방지역, 접경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굉장히 민감해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협박 수위를 높이면서 이걸 막기 위한 그런 대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헌재는 위헌 결정 당시 전단 살포 금지와 처벌 조항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 확보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가 더 커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입법 목적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헌재는 또 전단 살포 상황 별로 판단해 살포를 행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대북 전단 살포 현장에서의 경찰력을 통한 조치나 행정명령 등으로 민간단체의 무리한 행동을 제지할 수단은 많다면서 민간단체들도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 그 다음에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는 자극적 행동 이런 걸 하는 단체가 문제가 있다는 건 대북 전단 살포 생태계 내에서도 이미 있어요 공감대가. 그러니까 상당수 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 북한 내 긍정적 변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고려하고 북한을 공개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포를 해 온 게 기본 입장이었거든요.”
헌재는 앞서 지난달 26일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위반행위에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미화로 약 2만2천 달러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남북관계발전법 24조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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