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내 마음”을 부른 가수 토니 베넷이 지난 7월 21일 타계했습니다. 향년 96세. 미국의 각종 미디어는 “재즈풍의 달콤한 사랑 노래로, 세월을 뛰어넘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전설적 가수가 갔다”며, 일제히 그의 운명 소식을 전했습니다.
70 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도 지칠줄 몰랐던 가수, Tony Bennett. 그는 60 개의 스튜디오 앨범, 31 개의 편집 앨범, 81 개의 싱글, 18 개의 그래미 상, 그리고 전 세계에 5 천만 개가 넘는 레코드 판매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토니 베넷은 1926년 8월 3일, 대도시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 계 이민자 집안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이름은 안토니 도미니크 베네디토였습니다. 이때는 미국의
경제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토니는 불과 10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더욱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베넷은 뉴욕시에 있는 공업예술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을 돕기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노래하는 웨이터로 일을 했습니다. 2차 대전때는 육군 사병으로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대후에는 군 복무자 특혜제도의 힘을 빌어 무대공연 예술을 가르치는 ‘아메리컨 시어터 윙’이라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그의 성악 코치 미미 스피어가 ‘다른 가수를 모방하지 말라. 그대신 연주가들과 경쟁을 하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베넷은 이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겨 들었습니다.
일찍부터 재즈 가수로 데뷔했던 가난한 도시 청년 토니 베넷에게는 25살때인 1951년 첫번째 힛트 싱글 음반 ‘당신 때문이야’가 힛트하면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62년 그의 대표곡이라 할수 있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가 나왔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나를 불러요. 작은 케이블카들이 별들을 향해 반쯤 올라가는 곳이죠. 푸르고 바람부는 바다위에요”
몸은 맨해튼에 살지만 지독하게 외로움을 겪으며,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를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는 그 다음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 부문상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동등한 가수로 올라섰습니다. 토니 베넷은 ‘이 노래가 나를 세계적인 가수로 만들었다. 이 곡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프로 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홈 구장인 <Oracle Park(오라클 파크)>에서 이길 때마다 이 노래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1950년 베넷은 콜럼비아 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Cold, Cold Heart 롤 포함한 초기의 히트곡들을 발표합니다. 1950년대 말에는 재즈 분야 정상급 인재들과 손을 잡고 재즈 음반 제작을 시도했습니다. 1962년,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로 대성공을 거둔 후 그는 I Wanna Be Around, The Good Life등으로 거듭 인기 순위 20위권으로 진입하는 호조를 보입니다. 베넷의 히트곡 중 하나 I’ll Be Seeing You 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비틀즈와 같은 록 음악을 하도록 요구하는 콜럼비아 레코드와 갈등이 생깁니다. 그는 콜럼비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음반들을 내놓았지만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로스 엔젤레스로 옮긴 베넷은 코케인, 마리화나 등을 시작합니다. 당시 그같은 약물들은 연예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약물에 빠져있던 그는 어느 유명 연예인이 마약 과다 사용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리고 끝내는 목숨을 잃는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베넷은 다시 정신줄을 잡고 습관을 고쳐 나갔습니다.
베넷이 재기하는데는 매니저로 있던 장남인 대니 베넷의 공이 컸습니다. 아들의 노력으로 베넷은 드디어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콜럼비아 레코드와 합류를 하고 거의 10년만에 스투디오 앨범 The Art of Excellence를 발표했습니다. 아들 대니 베넷은 아버지를 유명 토크쇼와 심슨 등 애니메이션 쇼 등에 출연시키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게 했습니다. 베넷은 1990년대 Perfectly Frank (1992), Steppin’ Out (1993), 세월이 흘라도 늘 사랑을 받는 Tony Bennett on Holiday (1997) 등의 음반으로 다시 인기를 되찾았습니다.
어린이용 Tony Bennett: The Playground (1998)도 나왔습니다. 2002년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토니 베넷 크리스마스 명곡집도 냈습니다.
2002년 베넷은K.D. Lang과 팀을 이루어 아름다운 세상, A Wonderful World를 녹음했습니다. 이 음반은 전통 Pop Vocal Album 분야에서 취우수 그래미 상을 받았습니다. 이 음반은 그 생애 후반기의 표준을 이루어 놓은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토니 베넷은 80대에 들어서서도 최신 음반을 소개하며 왕성한 음악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6년에는 80세 생일을 기념해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엘튼 존, 스팅 등이 함께 한 듀엣 One판들이 나왔습니다. 이들 작품은 2011년의 듀엣 Two판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레이디 가가와 함께 부른 The Lady Is a Tramp도 있습니다. 2014년 9월 두 사람은 Cheek to Cheek 를 발표했습니다. 88세이던 그해 베넷은 이 곡으로 그래미 상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베넷은 '빌보드 200’의 1위 앨범을 낸 최고령 가수가 됐습니다.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곡 I Get A Kick Out Of You입니다.
베넷과 레이디 가가는 2021년 다시 뭉쳐, 사랑을 사세요 Love for Sale을 불렀습니다. 나이를 모르는 사랑 노래꾼은 계속 솔로 음반도 냅니다. 2015년의 The Silver Lining: The Songs of Jerome Kern이 그것입니다. 이 음반도 다음해 그래미 상을 차지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90세를 기념한 음반에서도 Best Traditional Pop Vocal Album상을 받습니다. 생애 무려 19차례의 그래미 상을 받은 그는 워싱턴 디시의 케네디 센터, 유엔 등에서도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는 각종 자선 공연도 열었습니다.
베넷은 가수이면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안토니 베네디토 라고 사인한 그의 미술 작품들은 스미소니언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1996년에 펴낸 토니 베넷의 첫번째 화보집 What My Heart Has Seen에는 여러가지 자료를 이용해 그려진 초상, 풍경, 정물 등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달나라로 데려다 주세요’입니다.
베넷은 1998년 자서전 The Good Life: The Autobiography of Tony Bennett , 2007년 Tony Bennett in the Studio: A Life of Art & Music , 2012년 Life Is a Gift: The Zen of Bennett ‘인생은 선물이다, 베넷의 선’을 펴냈습니다.
베넷은 세번 결혼하고 자녀 넷을 두었습니다. 1952년에는 패트리시아 비치와 결혼했습니다. 이때 대니와 데이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첫 부인과 이혼한 다음에는 샌드라 그랜트와 재혼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요하나, 앤토니아 두 딸이 태어났습니다. 이들 부부도 이혼으로 막을 내리고 2007년 수전 크로우가 세번째 부인이 됐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수전은 베넷이 타계할 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아무리 노익장을 과시한 그도 나이 앞에서는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2021년 베넷은 자신이 알츠하이머, 즉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 증세는 5년전부터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21년 그는 마지막 음반을 냈습니다. 그리고 뉴욕 맨하탄의 라디오 시티홀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유행의 가수이며 화가이고 배우인 토니 베넷은 97세를 불과 2주 남겨놓고 뉴욕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