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쿡은 기독교 복음 가수에서 팝 음악의 대 스타가 된 첫 아프리카계 가수입니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샘쿡은 미국 음악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수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소울 음악의 선구자일 뿐 아니라 그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소울의 황제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샘쿡이 세상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도 독특한 음색의 그가 팝 음악에 끼친 영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음악 스타일은 흑인들은 물론 백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지만 샘쿡이 이 자작곡 You Send Me를 불러 힛트를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샘쿡은 1931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남부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일리노이주의 대도시 시카고였습니다.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였습니다. 쿡은 불과 15살때부터 노래를 불렀습니다. 19살때는 당시 이름 있는 복음 음악단 쏘울 스터러스(SOUL STIRRERS)에서 선창자가 됐습니다.
1950년 그는 악단이 부를 노래를 직접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악단에서 활동한 6년 동안 쿡은 자신의 스타일을 쏘울 스터러스에 가미했습니다.
어느덧 그는 복음 음악에서 가장 뛰어난 스타로 올라섰습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는 그는 특히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노래 "TOUCH THE HEM OF HIS GARMENT"
는 오랫 동안 중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 자락에 손을 대 치유를 받았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노래한 것입니다.
샘쿡은 소울 스터러스 단원으로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지만 그는 다른 노래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복음 음악은 당시 흑인들의 중요한 문화였고, 그 사회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팝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향을 바꾸기로 한 그의 결정은 많은 흑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의 그같은 변화는 오늘날 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대 흑백 인종 갈등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당시 백인 청취자를 갖고 있는 라디오 방송국들은 흑인 가수의 노래를 틀지 않았습니다. 소울 스터러스의 노래를 녹음한 음반사도 샘쿡에게 팝 뮤직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지하게 조언했습니다. 그같은 변신은 소울 스터러스 팬들을 저버리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샘쿡은 모든 사람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는 흑인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백인도 혐오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소울 스터러스가 흑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샘쿡은 악단을 떠났습니다. 조심스런 결정이었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는 팝 뮤직의 대 스타가 된 것입니다. 샘쿡의 첫 팝 음반은 1957년 킨 (KEEN)이라는 조그마한 음반사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앞서 들은 YOU SEND ME입니다.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첫해에만 음반이 170만장이나 팔리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가수로서의 그의 능력을 증명해준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를 반하게 만든 건 바로 그대,
당신의 매력에 빠지게 한건 바로 그대,
잠시인 줄 알았는데, 끝이 없네요,
이제 그대와 결혼하고 싶어요….
샘쿡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목소리와도 달랐습니다. 그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1959년 그는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음반사를 창업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S.R.A. 레코드’였습니다. 또 KAGS MUSIC이라는 음악 출판사를 차려 그의 모든 노래의 판권을 이 회사가 소유하도록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할수 있는 흑인 음악가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관리를 하지 않은 음악가들은 사업상으로는 다 실패했습니다.
KEEN 레코드를 갖고 있을 때 나온 히트곡 중하나가 WONDERFUL WORLD입니다.
“역사도 잘 모르고, 생물학도 잘 모르고, 과학책도 잘 모르고, 학교에서 배운 프랑스어도 잘 몰라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알아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잘 알아요. 얼마나 황홀한 세상인가요...”
1960년 샘쿡은 대형 음반사인 RCA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작은 흑인 음반사 사람이 그렇게 큰 음악사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RCA로 옮긴 후 샘쿡은 히트곡을 많이 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금 들으신 ‘BRING IT ON HOME TO ME, 우리 집으로 가져다주세요’입니다. 그가 흑인 교회에 다닐때 시작한 음악적 표현 "CALL AND ANSWER" ‘부르고 응답하라’를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1962년 샘쿡은 RCA에서 인기있는 새로운 댄스 트위스트 곡을 내놓았습니다. 곡목은 "TWISTIN' THE NIGHT AWAY"입니다.
1964년 12월 인기 높은 샘쿡의 생애는 갑자기 종말을 고했습니다. 로스 엔젤레스를 방문한 그가 한 여성과 투숙했던 모텔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입니다. 총을 쏜 사람은 모텔 관리인이던 한 여성이었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이 서로 엇갈려 사건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채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이 불과 33살. 그의 사망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20만명이 넘는 팬들이 도시의 네 구역에 걸쳐 줄을 서서 그의 시신에 마지막 인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유해는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공원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는 저세상 사람이 됐는데도 생전에 발표하지 못했던 노래 두곡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 "A CHANGE IS GONNA COME." ‘변화는 온다’입니다.
성가와 팝을 혼합한 강렬한 이 노래는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투쟁의 노래로 불리웠습니다. 팬들에게는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이 노래가 마치 자신들에게 전하는 위대한 음악인의 멧시지 처럼 들렸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들도 나왔습니다.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은 샘쿡을 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인 100명 중 16위로 꼽았습니다. 가수로는 4위로 꼽았습니다. 2023년에는 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3위로 선정했습니다. 대도시 시카고는 그가 살았던 동네의 거리를 샘쿡 웨이로 명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