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때가 있었지.
우리는 사랑을 노래했고, 우리의 가슴은 하나 처럼 뛰었고,,,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네.”
검은 옷 입은 사나이, The Man in Black으로 불리우던 자니 캐시의 노래Time Changes Everything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롭게 맞은 새해도 어느 새 한달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걸 의식할 때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는 자니 캐시의 노래가 더욱 실감나게 들리기도 합니다.
깊고 차분한 바리톤의 음색을 가진 그는 100곡이 넘는 히트싱글을 내며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등 거목들과 함께, 1950~60년대를 빛낸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니 캐시가 전 세계에서 판매한 음반 수는 9,000만 장이 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가수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자니 캐시는 1932년 2월 26일, 미국 남부 아칸소주 킹스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남침례교 교도이자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7남매중 한명이었습니다.
캐시 가족은 프랭클린 루즈베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덕택에 방 5개가 있는 농가에 20에이커의 농장을 불하받아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목화 등 각종 농산물을 기르며 빚을 갚아가야 하는 농장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니는 18살이 될때까지 형제 자매와 함께 아버지를 도우며 살았습니다.
캐시 가족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는 음악이 큰 몫을 했습니다. 어린 자니의 주변에서 들리는 노래는 어머니가 부르는 민요, 교회의 찬송가, 일꾼들이 농장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 등이었습니다. 특히 자니의 음악에 영향을 준건 교회에 열심인 어머니, 당시 농장의 생활 등이었고, 그것은 일생동안 그의 음악적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노래suppertime은 밖에서 노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저녁 먹을 시간이야 들어와’라고 부르는 정겨운 고향을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뛰어났던 자니는 불과 12살에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돈을 아껴 자니에게 노래 교습을 시켜주었습니다. 불과 세차례 수업을 해본 음악교사는
자니에게 독특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절대 다른 사람의 교습대로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특성을 잘 지키라고 강조했습니다.
자니는 1950년 미국 공군에 입대해 텍사스 주 산 안토니오 기지에서 복무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장차 아내가 될 비비안 리버토를 만났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소련의 무전을 감청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자니 캐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군에 복무하면서 점점 더 강렬해졌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래와 기타 연주를 익히는 한편 작곡도 시도했습니다. 군대 친구 몇명과 함께 ‘랜스버그 바바리안’이라는 악단을 조직해 무대공연도 했습니다.
4년 동안의 복무를 마친 자니 캐시는 비비안과 결혼하고 테네시 주 멤피스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자니 캐시는 먹고 살기 위해 가전제품 판매원으로 일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술자인 마샬 그랜트, 루터 퍼킨스와 3인조 악단을 조직해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자니 캐시는 악단의 리더였습니다. 이때는 주로 복음 성가를 노래했습니다.
자니 캐시 트리오는 공연을 통해 차츰 블루스와 칸추리 웨스턴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을 들어냈습니다. 1954년 여름, 또 한 사람의 멤피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히트곡을 내면서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엘비스의 음반은 그 지역 음반사 선 레코드(Sun Record)에서 취입한 것이었습니다.
그해 자니 캐시도 동료들과 함께 오디션을 받기 위해 선 레코드의 샘 필립스 (Sam Phillips)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필립스 사장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찬송가 식 노래는 상업성이 없다며 이들이 가진 본래의 곡들을 준비해 다시 오라고 요구했습니다.
트리오는 캐시가 작곡한 헤이 포터 (Hey Porter)를 준비해 음반사를 찾아갔습니다. 필립스는 그 곡을 좋아했습니다. 그 후속으로 나온 ‘크라이, 크라이, 크라이’ 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전속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태양이 지는 걸 보면, 혼자 남으면, 사랑하는 이가 떠나면, 그대는 운다는 "Cry, Cry, Cry"는 그해 빌보드 순위 14위를 기록하는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대박이 터진건 1956년 발표한 I Walk The Line 이었습니다. 이 곡은 그해 컨츄리 음악 차트 1위를 기록하고 2백만장이 팔리는 대 힛트를 쳤습니다. 마음도, 눈도 그대에 묶여 있는 나, 그대는 나의 것, 나는 그 길을 걸어요. 나는 바보라는 걸 알지.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걸어요.
머지 않아 자니 캐시는 정상급 연예인으로 올라섭니다. 그리고는 마약과 음주로 추락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니 캐시는 그러나 불굴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자니 캐시의 이야기는 다음 주 제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