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첫 북한 국적자 문철명이 형기만료로 석방됐습니다. 그동안 구치소에 수감됐던 기간이 최종 형량으로 선고됐기 때문인데, 앞으로 미국 이민국으로 신병이 인도돼 본격적인 추방 절차를 밟게 될 전망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법원이 문철명의 구금 기간을 최종 형량으로 결정했습니다.
루돌프 콘트레라스 판사는 20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문철명이 말레이시아 구금 시설에 머문 시점부터 미국 구치소에 수감된 현재 시점까지를 최종 징역 형량으로 선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문철명은 법적으로 이날 공식 석방됐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신병이 인도된 범죄인을 추방하도록 한 미국 법에 따라 문철명은 추방 전까지 구금시설에 더 머물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무역 업무를 했던 북한 국적자 문철명은 지난 2019년 5월 미국 수사 당국의 요청을 받은 말레이시아 당국에 의해 체포됐고 2021년 3월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됐습니다.
문철명은 체포 이후 줄곧 구치소 생활을 해 왔습니다. 2019년 5월을 기준으로 한 문철명의 최종 형량은 약 45개월입니다.
콘트레라스 판사는 문철명이 미 금융체계를 이용해 북한에 사치품을 제공하는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북한 정권을 돕기 위해 위장 회사와 서류, 제 3자를 통한 송금 방식 등을 이용하며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도 위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문철명이 미국 은행 등에 실질적인 금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점과 전과가 없다는 점, 나이 57세로 재범 가능성이 적다는 점 등을 형량 결정에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문철명이 거래한 물품 상당수가 무기가 아닌 사치품이었고, 구금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쉽지 않은 수감 생활을 했다는 점이 최종 판결의 요소로 고려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앞서 미국 연방검찰은 지난 9일 재판부에 제출한 ‘선고 제안서’를 통해 문철명에게 121개월에서 151개월의 중형을 구형한 바 있습니다.
반면 문철명의 변호인은 문철명의 말레이시아와 미국 구치소 수감 기간을 최종 형량으로 산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4년 미만의 실형 선고를 제안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날 재판부는 변호인의 주장을 수용한 것입니다.
이날 오렌지색 수감복을 입은 문철명은 연방 보안국(US Marshals) 요원에 이끌려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다소 왜소한 체구인 문철명은 안경을 끼고 머리는 단정하게 정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 판사의 말은 한국어 통역을 거쳐 문철명에게 전달됐으며, 문철명은 그 때마다 “예”, “알겠습니다” 혹은 “그렇습니다” 등으로 대답했습니다.
콘트레라스 판사는 선고 직전 문철명이 2건의 문서에 서명한 것이 맞는지를 몇 차례 확인했습니다.
해당 문서 2건은 각각 미국에서 추방되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과 항소를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철명은 ‘이 문건의 중요성을 이해하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이해한다”고 답했으며, ‘자진해서 서명한 것인가’, ‘충분히 인지했는가’ 등의 거듭된 질문에도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울러 콘트레라스 판사가 선고를 마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긴 여정이었을 것”이라며 “행운을 빈다”고 말하자, 문철명은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선고 공판에는 미국 검찰 측에서 3명이 출석했으며, 문철명 측에서도 변호인 3명이 자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최종 판결 직후 VOA의 논평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한편 북한 측 인사는 이날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VOA는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에 문철명에 대한 미국의 사법 절차 관련 논평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모든 형기를 채운 문철명은 미국 이민국으로 신병이 인도돼 본격적인 추방 절차를 밟게 될 전망입니다.
다만 이날 변호인은 북한 국적자에 대한 추방이 흔치 않은 일인 만큼 관련 절차가 좀 더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문철명은 북한으로 신병이 인도돼야 하지만 현재 미국과 북한은 외교관계가 맺어지지 않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또 문철명이 미국으로 향하기 전 머물었던 말레이시아도 현재 북한과 단교 상태여서 문철명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2019년 문철명에 대한 미국 신병 인도를 계기로 외교관계를 끊었습니다.
현재 문철명은 부인과 딸이 거주 중인 중국으로의 추방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최초 신병이 인도될 당시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여권이 없는 문철명이 북한이 아닌 제 3국으로 향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