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북한 전략무기에 대한 한국 측의 평가를 맹비난하는 담화를 냈습니다.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능력을 폄하하고 있다며 정상각도 시험발사를 시사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0일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5천자 분량의 막말 담화를 내놨습니다.
담화는 북한 전략무기 등 군사력 수준에 대한 한국 측 평가를 반박하고 미한 군 당국의 대북 감시능력, 윤석열 한국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김 부부장은 특히 한국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괴뢰군 깡패’ 또는 ‘괴뢰 전문가 나부랭이’라고 칭하면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한 이들의 부정적 평가를 맹비난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고각발사만으로는 입증할 수 없고 실제각도로 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따위 논거로 우리 전략무기 능력을 폄훼해보자고 접어들 것이 뻔할 것 같아 보인다”며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고각발사로만 이뤄졌던 ICBM 시험발사를 정상각도인 30~45도로 쏠 것임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김 부부장은 그러면서 “만약 대기권 재돌입 기술이 미흡했다면 조종전투부의 원격 자료를 탄착 순간까지 받을 수가 없게 된다”며 해당 기술을 이미 확보한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이런 발언은 그동안 미한 정보 당국과 국제사회 전문가들의 북한의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혼란을 주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입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재진입체 기술이 개발이 안 됐으면 위협이 안되잖아요. 그런 평가를 자기들이 당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동안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목조목 반박을 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들 미사일 기술이 확실하게 ICBM급도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입으로 얘기하는 거에요. 지금 김여정이 이렇게 떠들어 버리면 재진입체 기술에 대해서 국제사회 평가가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죠.”
김 부부장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대기권에 재진입한 ICBM 탄두부에서 송출한 신호를 수신했고 이는 그간 의문시되던 북한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확보됐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설사 수신에 성공했다고 해도 이를 근거로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각발사와 정상각도 발사는 재진입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고각발사를 통한 ICBM의 대기권 재진입 자체가 검증 통과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박사입니다.
[녹취: 이춘근 박사] “북한에서 말하는 것은 고각발사를 해서 근거리에 탄착시킨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건데 이건 실거리 사격했을 때 데이터와 다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북한이 지금 갖고 있는 데이터는 간접 데이터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김 부부장이 정상각도 발사를 시사한 발언과 관련해선 개연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이 ICBM을 정상각도로 발사할 경우 동해상에 떨어지는 고각발사와 달리 하와이 인근 또는 미국 쪽에 가까운 태평양에 낙하할 수 있습니다.
이춘근 박사는 실거리 사격을 하려면 데이터 수집을 위한 대규모 측량선이 미사일 탄착지점에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그럴 능력이 없다면서도, 북한이 정상각도 발사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북한이 ICBM을 정상각도로 발사하면 데이터 수신을 못하더라도 미국이나 한국, 일본 당국 발표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성공 여부 정도는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 부부장의 발언은 대미 위협과 정상각도 발사 명분 축적용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대한민국 전문가들이나 군 당국의 북한 ICBM 등 기술적 폄하에 대해서 비난을 이례적으로 했는데요, 그런 비난과 함께 일본의 적 기지 공격 능력 강화도 비난을 하면서 향후 ICBM 정상각도 발사 도발에 대한 명분을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지난 18일 북한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해 실시했다는 최종단계의 중요한 시험과 관련해서도 한국 측 전문가들의 혹평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위성촬영 사진의 화질에 대해 한국 측에서 ‘조악한 수준’이라거나 ‘기만활동’ 등의 부정적 평가가 나온 점을 문제 삼으며 “남을 깎아내리는 데만 골몰하니 상식 밖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있겠는가”라고 비난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누가 830초에 지나지 않는 1회성 시험에 값비싼 고분해능 촬영기를 설치하고 시험을 하겠는가”라며 이번 시험에 의도적으로 낮은 성능의 촬영기구를 활용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한 군 당국이 자신들의 정찰위성 시험발사를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시험발사로 평가한 데 대해서도 “위성 개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면 하등의 필요도 없이 파철 같은 구형 미사일은 왜 쏘았겠는가”라고 반박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18일 쏜 발사체에 대해 북한이 공개한 발사 장면 사진을 근거로 구형 노동미사일이라는 관측과 사거리를 근거로 노동미사일 개량형일 가능성 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부부장이 막말 담화를 통해 자신들이 공개한 전략무기 개발이 빈말이 아님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찰위성의 경우 공화국 창건 75주년인 내년 발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인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인공위성을 실제 안에 여러 가지 부품들을 만들고 카메라 등 일련의 실험을 하고 있으니까 4월까지 인공위성 제작을 하겠죠. 완료가 되면 이미 발사체들은 있는 거니까요. 그것을 갖고 4월 이후 실제 해나갈 겁니다.”
김 부부장은 이와 함께 담화에서 미한 군 당국의 대북 감시 능력을 비하하며 탐지 정보가 부정확하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9월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발사 지점과 지난 9월25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방식, 지난 8월 순항미사일 발사 장소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명까지 거론하며 한국 군 발표가 틀렸음을 비꼬았습니다.
김동엽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미한 당국의 정보에 대한 한국 내부의 불신을 키우려는 여론전 성격을 띄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와 미한의 독자 대북 제재에 대해선 “제재 따위가 뭐가 두려워 갈 길을 멈추겠느냐”고 반발했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선 “황당한 망상만 하고 있을 대신 작금의 사태를 안정시킬 생각에 전념하는 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고 일관된 입장으로 담대한 구상을 흔들림없이 지속 추진하겠다”며 “북한이 지금 해야 할 것은 도발과 위협, 핵 능력 강화나 군사 정찰위성 개발이 아니라 ‘담대한 구상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지난달 24일 미국과 한국의 대북 독자 제재 추진에 반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 담화를 내놓은 지 거의 한 달 만에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