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미 정부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 절대 잊지 않을 것”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저지선을 뚫고 흥남으로 이동하는 미 해병대원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저지선을 뚫고 흥남으로 이동하는 미 해병대원들.

미국 정부와 군 당국이 6·25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 72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들의 용맹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공군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수호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렸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29일 ‘트위터’를 통해 ‘장진호 전투’ 72주년을 기념하는 미 해병대의 트윗을 공유하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 해병대는 전날 ‘트위터’를 통해 메시지와 동영상을 공유하며 “1950년 11월 27일, 미국과 미국의 유엔 동맹 병력 3만 명이 장진호 전투를 시작해 12만 명의 중공군과 싸우면서 혹독하고 얼어붙은 지형을 뚫고 나아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 6개 사단을 궤멸시켰다고 미 해병대는 밝혔습니다.

미 해병대 1사단도 별도로 ‘트위터’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1사단이 장진호 인근에서 12만 명의 중공군에게 포위됐던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이어 “미 해병대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우며 적진을 돌파했다”면서 “장진호 참전용사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강조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북한 공산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 해병 1사단과 육군 7사단 2개 대대, 영국 해병 제41코만도 부대,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 장병 등 3만여 명은 당시 12만 명에 달하는 중공군의 기습과 포위망을 뚫고 철수에 성공하면서 중공군에 큰 타격을 가했습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제72주년 장진호전투 기념 및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 추념사를 통해 장진호 전투를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민식 처장] “72년 전 미 해병 1사단을 비롯한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은 영하 30도의 혹한과 험난한 지형 속에서 적과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은 중공군 9개 사단 12만 명의 공격을 2주간 지연시키면서 7개 사단을 궤멸시켰습니다. 이러한 투혼이 있었기에 자유를 향한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출한 흥남철수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에서 치러진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장진호전투협회(Chosin Few) 워렌 위드한 회장 등 미 참전용사들은 이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한 양국의 미래는 지금과 같을 것이며, 언제 어디에서든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장진호 전투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헥터 카페라타 씨. 사진 = 미 국방부.
장진호 전투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헥터 카페라타 씨. 사진 = 미 국방부.

한편 미국 국방부는 28일 매주 월요일마다 홈페이지에 올리는 ‘명예훈장 월요일(Medal of Honor Monday) 주인공으로 장진호 전투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헥터 카페라타 씨를 소개했습니다.

국방부는 미 해병대 병사로 참전한 헥터 씨가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가 발발했을 때 거의 단독으로 적군이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전선이 끊어지면 수천 명의 미군이 고립될 수 있었다”면서 “그 시련을 이겨낸 그의 끝없는 용기로 그는 명예훈장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카페타라 씨는 1952년 백악관에서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직접 받았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