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의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미국과 유럽, 한국의 전·현직 관리 등 전문가들이 비판했습니다. 부실한 국정운영에 따른 인재와 참사는 자국민을 굶주리게 만들고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영국 의회의 데이비드 알톤 상원의원은 18일 VOA에 보낸 성명을 통해 북한 정권이 한국의 비극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알톤 의원은 북한의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16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앞서 한국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누그러뜨리려 북한 인권 문제를 극대화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북한 대사의 공격적 발언은 끔찍한 슬픔과 고통을 남긴 비극을 악용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알톤 상원의원] ““The Ambassador’s offensive remarks seek to exploit a tragedy which has left terrible heartbreak and suffering in its wake. This was a moment for expressions of sympathy and condolences to comfort grieving families and friends – not an opportunity for trying to turn a tragedy into political capital.”
알톤 의원은 “이는 슬픔에 잠긴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공감과 애도를 표하는 순간이지 비극을 정치적 이익으로 바꾸려는 기회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북한의 김성 대사는 제3위원회 회의에서 “최근 국정운영의 부실로 인해 전례 없는 압사 사망의 인재를 촉발시킨 한국이 정치적 대립을 서슴지 않고 국내외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유엔 무대에서 인권 문제를 극대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톤 의원은 북한 지도부가 이렇게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막말과 주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 도발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은 기껏해야 어중간한 정도였고 나쁘게 말하면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알톤 상원의원] “The international community’s approach to human rights violations in North Korea has been half-hearted at best and disinterested at worst. The UN’s own Commission of Inquiry found evidence of crimes against humanity and said those responsible should be prosecuted by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Eight years later that Report continues to gather dust.”
특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 증거를 발견해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해야 한다고 했지만 8년이 지난 현재 보고서엔 계속 먼지만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알톤 의원은 이런 이유로 “김정은이 자국민을 계속 억압하면서 탄도미사일 발사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지역과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등 자신이 처벌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한이 유엔 무대에서 자국의 인권 침해를 전면 부인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는 한국을 비난하기 위한 “서투른(ham-handed) 노력”에 불과하다며 인재로 인한 참사는 한국이 아닌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The man-made disaster is certainly caused by the policies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t's another indication of North Korea's distance from the truth. There's nothing that comes out of North Korea that reflects the realistic situation.”
킹 전 특사는 “인재는 분명히 북한 정부의 정책에 의해 야기된다”면서 북한 대사의 발언은 “북한이 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징표”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입니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16일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18년 연속 채택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킹 전 특사는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이신화 외교부 국제인권협력대사도 17일 VOA에 북한의 발언은 억지주장이자 궁색한 변명이라며 일축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중국과 러시아도 애도와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래도 정상 국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건(애도는) 우리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태원 참사를 누그러뜨리려고 우리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건드렸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죠. 그 이유는 그 얘기를 해서 설득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정치적 이유 외에 저는 어떤 국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대사는 윤석열 정부는 이미 유엔 헌장에 따라 인간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갖고 이태원 참사 전부터 북한인권 개선 노력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국가 애도 기간에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고 유엔 무대에서 한국인들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모습은 ‘우리민족끼리’란 구호의 허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남도 아니고 우리 민족끼리라고 말하면서 그 민족인 나라에서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잖아요.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 못할망정 바로 미사일을 쏘고…말이 안 되죠. (김성 대사의 발언은) 오히려 국제사회를 향해 말하는 게 아니라 평양에 대고 나의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마치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이 대사는 또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16일 채택한 결의안의 주요 의미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인권 유린이 동전의 양면이란 점에서 북한 정권이 국가 재원을 주민이 아닌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전용하는 상황을 규탄한 내용이 들어간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터프츠대의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교수는 주민 상당수가 수십 년째 영양실조를 겪는 나라 정부가 세계적인 선진국의 국정운영 실패, 인재를 비판하는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성윤 교수] “기아가 발생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매년 지속된다는 게 굉장히 신기한 현상입니다. 부자연스럽고. 이것이야말로 매년 반복되는 극심한 인재입니다. 고의로 주민들을 굶주림에 방치한다는 게 극심한 인권 유린이고 인재입니다. 미사일과 사치품에는 그렇게 거액을 쓰면서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생각은 안 하잖아요.”
이 교수는 대북제재가 본격화된 2016년 이전에도 북한은 왜 가난했는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끊임없는 재난은 왜 두만강과 38선 사이에서만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북한 주민들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 정부가 한국의 비극을 계기로 한국 국민과 정부에 폭언을 퍼부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잔인하고 부조리한 대응 이면에는 한국의 힘과 명성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분노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 “North Korea's government has used the occasion of a tragedy in the South to verbally assault the people of the ROK and its government. Beneath the DPRK's cruel and incongruous response is its deep fear and resentment of South Korea's power and reputation.”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은 만연한 반인도적 범죄로 규탄받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촉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 대상이 되는 빈곤국이지만 한국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 대조적으로 세계 경제 강국 중 하나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번창하고 국민은 기본적 인권을 향유하며 그들의 문화, 영화, 노래를 북한의 젊은이들이 따라 한다”는 설명입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유엔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 정부는 “자신들의 의심스러운 정당성(questionable legitimacy)을 옹호하기 위해 한국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 100여 개 나라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북한 정권이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비극적 참사를 통해 자신들의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의 기록을 숨기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단체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18일 VOA에 보낸 공식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그런 종류의 비난전이 북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자국민에 대한 그들의 잔혹 행위를 숨길 핑계 거리가 떨어져 가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성명] “If that kind of blame game is the best that Pyongyang can come up, it’s clear they are running out of excuses to hide their atrocities against their own people. The US, South Korea, Japan and the EU should now press hard for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issue to be urgently added to the agenda of the UN Security Council so that Pyongyang’s actions against its people can be treated like the threat to global peace and stability that it is”
로버트슨 부국장은 “미국, 한국, 일본, 그리고 EU는 이제 북한 인권 문제가 유엔 안보리 의제에 시급히 추가돼 북한 당국의 자국민에 대한 행위들이 세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취급되도록 강력히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유럽의 한반도 전문가인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렘코 브뢰커 교수도 “북한 대사가 심각한 국내 인권 상황을 부인하면서 다른 나라의 인권 사안을 거침없이 맹비난 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브뢰커 교수] “It is no longer a matter of surprise that a North Korean ambassador should freely lambast another country for its human rights issues, while denying the extremely serious human rights situation in the DPRK.”
브뢰커 교수는 또 최근의 전례 없는 미사일 도발 등을 볼 때 북한 지도부가 충분한 규모의 자금과 부품을 비축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며, 국제사회가 김정은의 돈줄을 차단하는 제재 노력을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규명 노력을 철저히 하고 있다며 한국은 북한 같은 경찰국가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명백히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국가의 행동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North Korea is definitely using this for political purposes. These are not the actions of a normal state. These are the actions of a very abnormal state. North Korea is a human rights violator that sacrifices the human rights and human security of its own people in order to develop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s that nobody needs. Nobody except for the Kim family regime and the Korean workers party.”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은 김씨 일가와 노동당 말고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해 자국민의 인권과 인간안보를 희생시키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인권 우선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영국의 알톤 상원의원은 냉전 시절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헬싱키 인권 의제와 강력한 군사적 억제를 동시에 증진하는 데 모두 단결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적 진전을 가져오기 위해 훨씬 더 전략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