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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그리피스, ‘대북지원’ 명목으로 암호화폐망 구축 시도…서울시 차원 제재면제 추진


북한에서 열린 가상화폐 회의에 참석했다가 지난해 11월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미국인 버질 그리피스 씨. 사진 제공: Cal School Of Information.
북한에서 열린 가상화폐 회의에 참석했다가 지난해 11월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미국인 버질 그리피스 씨. 사진 제공: Cal School Of Information.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가 2018년 북한에 암호화폐망 구축을 시도하면서 이를 대북지원으로 포장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한국의 대북지원을 ‘관행적 지원 패키지’라고 부르며 서울시 관계자 등의 도움을 받으려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버질 그리피스 씨가 2018년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에는 ‘지원’을 의미하는 ‘에이드(aid)’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에 첨부된 텔레그램 대화에 따르면 그리피스 씨는 2018년 8월 17일 미상의 인물들과 대화하며 ‘이더리움 노드’ 즉 암호화폐 거래의 주축으로 통하는 연결망 구축을 한국의 ‘에이드 패키지’ 즉, 대북 지원 형식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의 개발자였던 그리피스 씨는 지난 2019년 4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가상화폐 콘퍼런스에 참석한 혐의로 올해 4월 6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피스 씨는 당시 텔레그램 대화에서 “북한 노드 구축을 활발하게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에리카’라는 인물을 지칭한 뒤 “그녀가 한국의 (대북)지원 패키지의 일환으로 그런 일(북한 노드 구축)을 ‘마법적’으로 해 낼 수 있다면 내가 자금을 모으고 연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검찰은 별도의 문건에서 메시지 수신인을 이더리움의 ‘창립자’ 등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이더리움 관계자들은 그리피스 씨가 북한과 사업을 추진하는 데 우려를 표명했는데, 이에 그리피스 씨는 ‘북한 노드 구축’과 같은 일에 더 이상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북한 노드 구축이 이더리움이 아닌 한국 정부 차원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계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그리피스 씨는 북한 노드 구축에 대해 “만약 한국 기관(org)이 책임을 지겠다면 나는 도울 것이지만 단지 돕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더리움 관계자가 “다른 사람들에겐 그것을 지원 패키지(aid package)’라고 말하지 말라, 알고 있지?”라고 지적하자, 그리피스 씨는 “나는 유엔 문건에서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지원 패키지로 불리는 것을 봤으며, 에리카에게도 그것을 ‘한국의 관행적(habitual) 지원 패키지’라고 불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면서 “제안할 만한 다른 표현이 있느냐?”고 되묻자, 이 이더리움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며 “나는 네가 기이한 일에 발을 디디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또 다른 인물이 “한국의 민간 기관이 북한에 지원품을 보내는 것 자체가 허용되느냐”고 질문하자, 그리피스 씨는 “한국 민간 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나는 너희 둘이 맞는다고 판단하고, 이 일에서 빠지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리피스 씨는 “나는 그러한 (지원) 패키지의 존재를 발견했을 뿐이고 제재 체제는 이를 기꺼이 수용한다”며 한국 서울 시장을 언급했습니다.

“나는 서울시장이 이더리움을 위해 멋진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을 기억하는 만큼 따라서 우리가 서울에 연구센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에 북한에 노드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며 “그래서 나는 그것을 에리카에게 맡기면서 그들이 이끌고자 하면 그들에게 북한의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 연락처를 제공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분명히 하자면 10% 미만의 가능성일지라도 북한에 노드가 구축된다면 이는 우리와는 독립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한국이 그들의 의지로 북한에 (노드)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받는다면 이건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그리피스 씨가 언급한 ‘지원 패키지’는 유엔 안보리로부터 승인받는 제재 면제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대북지원을 희망하는 정부와 국제기구, 민간단체의 활동을 심사해 북한에 반입될 수 있는 물품에 대해 제재 면제 조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2020년 8월 온실 건설 지원을 희망한 경기도의 지원사업에 대해 제재 면제를 승인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 내용으로 미뤄 그리피스 씨는 서울시 등과 노드 구축 사업을 추진했으며, 이를 인도적 지원 패키지로 만들어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내는 계획을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피스 씨는 일주일 뒤인 24일 ‘CC-5’ 즉 ‘공모자 5번’으로 명명된 또 다른 인물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이 같은 의중을 전달했습니다.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미국 뉴욕남부 연방검찰이 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전수한 혐의로 수감 중인 버질 그리피스 씨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법원에 제출한 문건 중 일부.

검찰은 이후 또 다른 문건에서 공모자 5번을 한국의 사업 연락책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피스 씨는 이 대화에서 “북한 노드 문제와 관련해 묻고 싶다”고 운을 뗀 뒤 “이더리움 재단(EF)은 이 문제에서 물러서야 하지만 한국이 우리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다면 북한으로 그러한(노드 구축) 자금을 보낼 방법을 찾아준다면 매우 감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와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제재를 두려워한다”며 “내가 보기에 한국은 그런 제재를 위반하는 게 허용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VOA는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검찰이 공개한 문건을 토대로 그리피스 씨가 북한에 ‘이더리움 노드’를 구축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국 서울시의 도움을 받으려 한 정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특히 그리피스 씨는 이메일을 통해 북한 내 이더리움 관련 기관 설립 문제 등을 논의했는데, 이때 서울시 정부와 협의한 사실 등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미상의 인물은 2018년 6월 29일 그리피스 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당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암호화폐 관련 행사에 서울시장과 성남시장, 한국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회장, 국회의원 등이 연사로 나선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서울시와의 협의 사실을 확인하면서 “대화 중에 (서울의) 이더리움 연구센터에 대한 지원과 북한에 연구시설을 설치하는 문제가 언급됐다”며 “100% 확정된 제안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그리피스 씨 사건을 수사한 미 뉴욕남부 연방검찰은 ‘한국인 등에 대한 추가 수사가 진행 중이냐’는 VOA의 질의에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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