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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탈북민들, ‘엘리자베스 여왕 추모’ 동참…“솔선수범 리더십 인상적”


8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광장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사진이 걸렸다.
8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광장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사진이 걸렸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들도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여왕 추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많은 영국 국민이 자발적으로 여왕을 존경하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 지도자가 이를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비판적인 견해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70년간 재위한 영국 최장기 집권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에 전 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즉위해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영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 국민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런던의 버킹엄궁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들도 애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아시아 여성상’ 대상 등을 수상했던 박지현 씨는 9일 VOA에 엘리자베스 여왕 재임 시기에 영국에 있었던 게 자신에겐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스트레스가 많았을 텐데 국민 앞에 섰을 때는 항상 웃으시면서 나라를 위해 본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항상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영광이었던 것 같아요. 여왕이 집권했던 시기에 저도 영국 땅에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가장 큰 행운이고, 그분의 업적은 100년 후에도 기억될 것 같아요.”

박 씨는 특히 최고 군주인 여왕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며 지도자의 품격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에 영국 여성국방군(ATS)에 자원입대해 트럭운전병으로 복무했고, 국가 위기 때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민에게 용기와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겁니다.

박 씨는 옆집 할머니 같은 여왕의 인자한 미소가 많은 영국인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미소는 북한에서 느꼈던 지도자의 섬뜩한 미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북한 사회는 너무 우상화가 되어있다 보니까 독재자의 웃움이 저희한테는 사실 편안함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잖아요. 김일성과 김정일이 웃고 김정은이 웃는다는 자체가 우리가 편안하게 산다는 게 아니고 그 웃음 속에 칼날이 있기 때문에 항상 우상화에 대한 세뇌 교육으로 살아왔다면 여기는 자유민주 국가니까 여왕을 우상화한다는 게 없잖아요. 학교에서 다 (여왕을) 숭배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도 없고요.”

“강요와 공포가 아니라 자유롭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서 더욱 진심으로 지도자를 존경하게 된다”는 겁니다.

영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여왕은 헌법에 따라 국가 지도자로서 제한적 권한만 행사할 뿐 통치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반면 북한은 겉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수령 중심의 절대권력 체제, 사실상 절대군주제 혹은 신정국가란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 의회에 근무하며 최근 지방선거에 출마했었던 티머시 조 씨는 “북한과 영국의 극명한 차이는 지도자의 서거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김일성 부자가 사망했을 때 모든 주민이 일상을 멈추고 구름같이 모여들어 울부짖고 오열했던 북한과 달리 영국인들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여왕이 남긴 업적을 되새기고 이웃과 여왕에 관해 평화롭게 대화를 나눈다는 겁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여기는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그 사람을 추모해야 하고 존경해야 하고 좋아해야 하는 것이 없죠. 실제로 여왕이 지난 70년 동안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로서 보여준 모든 부분이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죠. 정신적 지주 역할, 영국인들의 정체성으로 봐야 하죠.”

조 씨는 독재자와 자유 민주사회에서 바라보는 군주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한마디로 품격을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영국의 여왕이나 다른 지도자들의 품격과 비교하고 본인도 그런 라인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지도자라면 항상 주민을 앞에 놓아야죠. 말만이 아니라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안전을 지키며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잘 수 있도록 하고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 따뜻하게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김정은이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북한 백성들로부터 품격있는 지도자로 존경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내 탈북민으로는 최초로 영국 정부가 제공하는 쉐브닝 장학생으로 선발돼 셰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오세혁 씨는 “진정성과 보여주기식 지도력의 차이”를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모두 국가 군주로 애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김 위원장은 권력까지 독점하며 보여주기식 통치에 집중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서 진정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녹취: 오세혁 씨] “김씨 일가가 현장에 나가 주민들 만나서 뭐하고, 좋은 일 한다고 말은 하는데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게 훨씬 많잖아요. 그런데 존경심은 누가 강제로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와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그냥 하고 싶어서. 영국 사람들과 전 세계에서 여왕에 보내는 존경심은 바로 그런 건데,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 보내는 존경은 스스로 나오는 자발적 존경심일까? 물론 세뇌당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존경심이 아니라 강제로 무서워서 하는 것이겠죠.”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한국 국회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여왕은 현대사 그 자체였고,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거목이었다”고 추모했습니다.

이어 “그가 중시한 평화, 화합, 존중의 가치는 늘 깨어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지현 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과거 자신에게 축전까지 보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서 본받을 것이 반드시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교훈은 자신이 3살 때 총을 잡고 1초 간격으로 10개의 과녁을 모두 명중시켰다는 날조된 내용을 교과서에 넣어 주민들에게 우상화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민을 존중하며 지도자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북한은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멉니다. 다가갈 수 없는. 진짜 하늘의 별 같은. 이런 우상화보다는 실질적으로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자신의 사명과 가치관, 의무가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몸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 국민이나 탈북민 모두가 왕실에 호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입헌군주제에 관해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영국의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유고브(YouGov)가 지난해 영국인 4천 8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5세-49세의 응답자 가운데 53%가 입헌군주제를 찬성했지만 18세~24세 사이 응답자는 31% 만이 “왕이나 여왕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번에 국왕 지위를 승계한 찰스 3세의 과거 이혼과 내연녀 문제, 해리 왕자가 폭로한 인종차별 문제 등 영국 왕실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이 이같은 부정적 여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청진의대 출신으로 영국에서 10여 년째 살고 있는 최승철 씨는 여왕 추모 행렬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자유민주 사회에서 좀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승철 씨] “조금 오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저는 이 상황이 좀 이해가 잘 안 돼요. 북한 김일성이 너무 절대적인 것에 반대했던 사람이라 이런 거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 솔직히 이해가 좀 안 돼요.”

회고록 발간을 준비 중이라는 최 씨는 그러나 북한 지도자에게 “자발적 충성의 중요성에 대해선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승철 씨] “제가 준비하는 책 파트 중의 하나가 김정은에게 하는 얘기가 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영국에서는 여왕이 충성하라는 말을 안 해도 사람들이 다 충성하잖아요. 이렇게 슬퍼하기도 하고. 그런데 저쪽은 충성이 강압에 의한 충성이지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충성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약에 그 사람(김정은)에게 얘기할 수 있다면 저 사람들처럼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지 말고 강요된 충성이 아닌 자발적 충성을 하도록, 아 이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되는구나 이렇게 충성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물론 절대군주제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일 수 있겠지만 내가 만약 김정은을 만나거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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