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5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북한은 꿈쩍도 안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대북 제재는 “오판이고 오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는지, 북한 경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요즘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은 한 장의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경제난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간 인공위성 사진업체인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북한이 남포항을 통해 중국의 식량 지원을 받고 있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북한은 인도와 베트남에도 식량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년 전인 2020년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치국 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이유로 들며 “외부의 어떤 지원도 받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올 8월부터는 북한이 조용히 외국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거나 받고 있는 겁니다.
이는 그만큼 식량 사정이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t tells me that they need food so bad. I’m reading about the agricultural situation in North Korea and even some of the farmers are in starving situation.”
북한 경제는 지난 5년간 크게 2단계에 걸쳐 악화됐습니다.
1단계는 안보리의 고강도 제재가 시작된 2017년부터 2020년까지입니다.
2017년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시작됐지만 북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 3년간은 제재에 잘 버티고 경제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제재가 시작될 당시 25-58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제재 이전인 2016년의 경우 북-중 무역고는 6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자금을 활용해 북한은 매달 2천만 달러 상당의 밀가루와 비료, 담배, 술 등 각종 소비재를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400여 개에 이르는 장마당과 시장에서는 주로 달러화와 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져 제재의 충격파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경제난이 경제 위기로 악화된 것은 2020년부터입니다.
그 해 1월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태가 발생하자 북한은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를 비롯해 10여 개 북-중 출입로를 차단했습니다.
북-중 무역이 갑자기 중단되자 북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밀가루와 식용유 같은 식료품은 물론 담배와 의약품 등 필수품 수입이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장마당 물가도 크게 올랐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kg 당 6천원 대였던 설탕 가격이 2만7천원으로 올랐고 1만6천원이던 조미료는 7만5천원으로 4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해 가을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10월 말을 기해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 대신 북한 돈인 ‘원’화를 사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히 8천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을 인위적으로 6천원으로 조정했습니다.
원래 경제가 나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법인데, 북한의 경우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또 북한 당국은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했습니다.
북한 경제를 오래 관찰해온 미국의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이 때를 기해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North Korea government is very low in foreign exchange…”
북한의 경제난은 최근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펴낸 보고서에서도 드러납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5일 ‘최근 5년의 북한경제 및 전망’ 보고서에서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북한 경제가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1.4%나 감소했습니다. 또 대외무역은 2021년 7억 1천만 달러로 1955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제재가 5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북한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비핵화는 커녕 북한은 오히려 핵과 미사일을 계속 증강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의 효과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난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다만 비핵화 접근방식이 불충분하거나 제재를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loophole)이 크기 때문에 제재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 경제가 일종의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북한 경제의 내구력으로 봤을때 임계점에 와 있다. 체제 붕괴는 모르겠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두 번째는 대북 제재가 실패했다는 시각입니다. 북한 수뇌부가 제재로 인한 피해를 사회 또는 주민에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임수호 책임연구원은 6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전체주의적 저항력’을 발휘해 제재에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코로나 사태를 명분으로 북-중 국경을 봉쇄해 소비재 수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국가의 식량 수매량을 늘려 도시 근로자에 대한 저임금 체계를 유지하고, 외화 사용을 엄격하게 단속해 환율과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고 임 책임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미국이 제재를 통해 핵 포기를 시도하는 것은 “적들의 오판이고 오산"이라며 "백날, 천날, 십년, 백년을 제재를 가해 보라 하라" 고 반문했습니다.
어느 쪽 분석이 맞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석유와 식량, 소비재 등 북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무기로 평양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은 올 1월부터 6월까지 31발의 미사일을 쏜 데 이어 지금은 추가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3월에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를 굴착해 5월에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핵실험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중국이 북한에 ‘핵실험을 하면 석유를 끊겠다’고 압박했거나 또는 석유를 주며 북한을 달랬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Oil flow pipeline cross over border…”
중국은 단둥에서 길이 30km의 지하송유관을 통해 평안북도에 있는 봉화화학공장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북-중 화물열차 문제도 논의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은 북-중 화물열차 운행을 빨리 재개하자는 입장입니다. 철도 운행이 재개돼야 중국에서 밀가루와 식용유 같은 생활필수품이 들어와 장마당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또 중국에서 원부자재가 수입돼야 공장과 기업소가 돌아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화물열차 재개도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같다고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북한은 철도 재개를 원하고 있지만 중국은 공산당 20차 대회 이후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을 볼 때 중국은 20차 공산당 대회까지 북한의 핵실험을 막으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올해 경제 목표 때문에 철도 재개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중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중국 공산당의 제 20차 전국대표대회는 오는 10월16일 베이징에서 열립니다.
대북 제재는 5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또는 비핵화에 나설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언제까지 제재에 버틸지, 또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