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열리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회의에서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력 시위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에 위기를 조성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한국 외교장관은 일련의 회의를 통해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미국-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은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The U.S. continues to have an abiding interest in peace and stability across the Taiwan Strait. We oppose any unilateral efforts to change the status quo, especially by force.”
블링컨 장관은 “특히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일방적인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타이완관계법, 미중 3대 공동성명, 6대 보장에 따른 ‘하나의 중국’ 정책에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며 “우리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위기를 만들거나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늘리려는 구실을 찾으려 하지 않길 바란다”며 “우리와 세계 각국은 긴장 고조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 등 누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근 며칠간 중국 측 상대들과 접촉하려 정부의 모든 수준에서 연락을 취했다”며 “양안의 안정 유지는 아세안내 우리의 모든 동료들을 포함해 역내 모든 국가에 이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중국군은 4일 타이완 주변에 총 1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다연장 로켓 등 장거리포 타격 훈련도 실시하는 등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맞서 예고한 군사 행동을 강행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일련의 연쇄 회동에서도 타이완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4일 블링컨 장관이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만나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를 위한 타이완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과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동의 노력을 언급했다”고 전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이밖에 4일 스리랑카 외무장관, 카타르 외무장관, 캄보디아 총리도 만났습니다.
아세안도 4일 성명을 내고 타이완을 둘러싼 미중 간 긴장 고조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아세안은 “타이완 해협의 정세 불안은 강대국들의 판단 착오와 심각한 대치를 비롯해 예측할 수 없는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당사자들 간 평화적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연쇄회동에서 대북정책 협조 당부
4일 아세안과 한국, 중국, 일본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도 열렸습니다.
참가국들은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 보건협력, 지역 정세 등을 논의했습니다.
박진 한국 외교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유연하고 열린 입장을 견지하겠다며,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와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도 적극 참여해 역내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 “The ASEAN plus 3 is indeed well-positioned to once again harness the power of joint action in dealing with new and emerging threats of this region. In this regard, the ROK welcomes the renewed fire-year work plan which prescribes concerted action to deal with the ongoing supply chain disruptions, widespread inflation and the risk of COVID-19 resurgence among others.”
박 장관은 “아세안+3는 이 지역의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는 공동 행동의 힘을 다시 한 번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한국은 계속되는 공급망 장애, 광범위한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 조치를 규정한 신규 5개년 계획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아세안+3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개년 협력계획을 채택했습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회의에서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Now, I think now is the time to address these challenges in a coordinated manner, and it is even more important to maintain and strengthen the free and open international order based on the rules of law.”
하야시 외무상은 모두발언에서 “법치주의에 입각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하야시 외무상이 블링컨 국무장관과 중국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기로 합의했다고 이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 진전을 도모하기 위해 아세안+3를 동아시아 협력의 주된 통로(platform)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왕 부장은 타이완 문제에 대한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을 이유로 일본 외무상과의 회의를 취소했습니다.
한국의 박진 장관은 이날 하야시 외무상과도 별도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미한일 삼각 공조의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박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에게 “오늘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양국 간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과 양국의 현안,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앞으로 양국 간 협의를 가속해 나가자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반도 상황이 엄중한 만큼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간 협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기로 의견 일치를 봤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장관은 이날 아세안 외교장관들과의 회의에서는 전략적 대화 강화 의지를 밝혔고, 특히 북핵 문제를 포함한 지역과 국제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또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핵 개발을 단념시키며 외교를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총체적이고 균형된 접근법을 취해나갈 것이라며, 이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와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박 장관은 뉴질랜드 외교장관과도 한반도와 역내 정세를 논의했고, 이때 뉴질랜드의 나나이아 마후타 장관은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고 한국 외교부가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일부터 5일까지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군부가 투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는 초청받지 못했으며, 나머지 9개 아세안 회원국과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총 27개 나라 대표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5일에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잇따라 개최됩니다.
특히 ARF는 북한이 참석하는 유일한 역내 안보 협의체이며, 두 회의 모두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등 역내 주요국가들이 대거 참여합니다.
한국 언론은 북한 대표로 ARF 회의에 참석하는 안광일 북한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겸 주인도네시아 대사가 4일 환영 만찬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