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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인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인물 아메리카] 인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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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은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은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유태계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브라운 운동과 광전효과를 증명하고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으며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중력파의 존재 예측으로 미래의 세계까지 내다볼수 있게 했습니다.

1905년 26세의 젊은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과학 전문지에 논문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그 안에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이론이 들어 있었습니다. 복잡한 수학공식으로 된 이 논문이 바로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이었습니다. 10년 뒤 아인슈타인은 이를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으로 더 확대해

발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 공간, 물질, 이동, 중력 등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이해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전자 기기를 만드는 공장의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음악과 독서를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유태인이었지만 종교적 계율에는 융통성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말은 천천히 하고 책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이 5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나침판을 사주었습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바늘이 언제나 같은 방향, 즉 북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고 큰 호기심을 갖게 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아버지와 삼촌에게 무엇이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들은 자기와 중력때문에 그렇다고 설명을 했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그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알수 없었고, 다만 어떤 물체든지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 학교들은 즐거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서는 안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학교가 마치 감옥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느날 삼촌인 제이콥에게 얼마나 학교가 싫은지, 특히 수학이 하기 싫은지 말했습니다.

그러자 삼촌은 마치 경찰관이 된 것 같이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네가 어떤 범인을 찾는다고 생각해봐. 누구인지 모르는 범인을 X라고 쳐. 그 X를 대수, 기하 등 수학 공식으로 찾아보는거야.”

그후부터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무척 좋아하게 됐습니다. 친구들이 아주 기초적인 수학을 배우며 쩔쩔 매는 동안 그는 미분, 적분 등 고등수학을 할수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놀때, 그는 “사람이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등 어린 아이같지 않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차 수학이나 물리학을 가르치고 싶었던 알버트는 나중에 스위스의 쮸리히 연방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교사직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스위스 정부 특허청에 들어가 심사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동안 아인슈타인은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1903년 연구 동반자이던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에 마리치와 이혼하고 엘자와 재혼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적부터 자기의 생각을 실험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자주 했습니다. 특허청에서 일하면서도 남는 시간이면 그는 늘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보통 연구실에서 각종 도구로 실험을 했지만 그는 펜과 종이가 전부였고, 자신의 마음이 하나의 실험실이었습니다. 이론 물리학자들의 연구방식이었습니다.

이 무렵 그는 빛이 항상 일정한 속도를 갖는다면 사람들이 알고 있던 자연법칙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유명했던 자연법칙들을 결합하고 수학적 규칙들을 적용해 새로운 자연법칙을 제시했습니다.

1905년 그는 이같은 자신의 사고를 이론으로 정리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했습니다. 즉 '브라운 운동', '광양자 가설', '특수 상대성 이론' 박사학위 논문인 '고체를 이루는 분자의 운동과 에너지', 그리고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에 대한 논문

등이었습니다. 이들 논문은 공간, 질량, 시간, 에너지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는, 창조적이고 혁명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논문은 특수상대성이론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특수한 등속으로 움직이는 빛에 대한 이론입니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 등속운동을 하는 모든 관찰자에게는 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 단 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등속운동을 하는 시공간의 시간은 느리게 가야하고 길이는 짧아져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상대성 이론은 우주여행에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초고속 우주선이라면 여행하는 거리만이 아니라 미래로도 여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나온지 10년 후 아인슈타인은 또 다른 이론을 완성했습니다. 즉 일반상대성이론이었습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속도가 늘어나는 물체의 이동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중력과 물질,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물체는 일종의 에너지인 빛을 발산할 때 질량을 상실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질량과 에너지는 같은 것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공식, E는 mc 제곱(E=mc2)입니다. 이 공식은 거대한 양의 에너지는 아주 작은 양의 물질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태양이 수백만년 동안 열과 빛을 발산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공식은 핵 에너지를 발견하는 단초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은 즉각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상은 상대성 이론 때문이 아니라 광전효과의 법칙에 대한 발견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과학의 법칙은 왜, 그리고, 어떻게 어떤 광물질은 그 표면에 빛이 닿을 때 전자를 발산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발견은 오늘날의 라디오, 텔레비젼과 같은 전자 제품의 개발을 가져오게 만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와 독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독일을 떠났습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와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 미국 시민이 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그토록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희고 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꾀죄죄한 낡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재였지만 세상살이에는 어눌했습니다. 어떤 사람과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를 잊어버려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이지만 바이얼린을 연주하거나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때는 내면의 기쁨을 열정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과 친구들에게 어려운 이론을 예를 들어가며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2차 대전을 반대하면서 무력과 탄압의 희생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타격이자 가해자들에게 더욱 용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1939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독일이 먼저 손을 대기 전에 원자탄을 개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핵무기를 사용하는데는 반대했습니다.

프린스턴에 살던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5년을 ‘통합 필드 이론’이라 불리우는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물리학의 각기 다른 모든 부분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 수학의 명제를 만들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복부대동맥류의 파열로 인한 내출혈을 경험한 적이 있는 그는 1955년 4월 18일, 이스라엘 건국 7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준비하다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그러나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수술은 의미가 없다’며 마지막까지 일을 하다 다음 날 7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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