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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재즈의 교본을 완성한 음악가, 듀크 엘링턴


[인물 아메리카] 재즈의 교본을 완성한 음악가, 듀크 엘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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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재즈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가, 듀크 엘링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재즈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에 작곡가였고 악단장이었습니다.

오늘은 재즈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가, 듀크 엘링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재즈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에 작곡가였고 악단장이었습니다.

심포닉 재즈의 완성자로 불리우는 그는 1920년대와 30년대 재즈를 꽃피우며, 고고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완성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50여년 동안 수 많은 공연과 함께 무려 2천여곡의 재즈를 작곡한 정력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음악 : Take the 'A' Train

지금 들으시는 곡은 듀크 엘링턴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A 기차를 타세요(Take the 'A' Train)’입니다.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은 이 곡의 첫 부분만 들어도 금방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연주라는 것을 압니다. 듀크 자신도 언제나 공연을 할때면 이 곡을 먼저 연주했습니다.

정식 이름이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인 듀크 엘링턴은 1899년 4월 29일, 워싱턴 디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흑백 인종이 분리돼 있었고, 아프리카 계인 엘링턴 가족도 워싱턴 시내의 흑인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제임스 엘링턴과 어머니 데이지 엘링턴은 모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엘링턴은 7살 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엘링턴은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우아한 옷을 입은 그를 보고 ‘너는 꼭 공작같다’고 말했습니다. 엘링턴의 의복이 귀족 같아서 공작, 즉 듀크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장난삼아 그를 공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부터 공작, 듀크는 그의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피아노와 그림 모두에 뛰어났습니다. 그러자 뉴욕에 있는 한 유명한 미술대학이 듀크에게 그 미대 진학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엘링턴은 음악에 더 흥미를 느껴 미대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그였지만 십대 시절 몰래 당구장을 드나들며 악보없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공연도 따라 해봤습니다. 그가 맨 처음 전문 직업을 가진 것은 1916년, 저녁 시간에 워싱턴 지역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은 래그타임이라 불리우는 것이었습니다. 래그타임은 19세기 후반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북미 전역에서 널리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듀크도 워싱턴을 방문한 악단들의 래그타임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신도 열심히 그들을 따라 연습했습니다.

여러해 뒤 듀크는, 자신이 그들 악단보다 낫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음반을 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래그타임 송, 직역하면 여러개의 손가락, "Lots o' Fingers."입니다.

음악:

듀크 엘링턴은 1923년 조그마한 악단을 조직해 뉴욕으로 갔습니다. 머지 않아 그는 뉴욕 시 할렘에 있는 유명한 나잇클럽 ‘카튼 클럽(Cotton Club)’에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엘링턴은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연주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엘링턴과 그의 멤버들은 흑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엘링턴은 백인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갖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악을 통해 자신을 알릴 뿐이었습니다. 점차 그의 악단은 규모가 커져 재즈 오케스트라가 됐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카튼 클럽에서 그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차츰 전국 어디에서도 들을수 있게 됐습니다.

듀크 엘링턴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여러 곡의 연주를 취입했습니다. 그 중 첫번째 히트는 1930년 10월에 취입한 ‘꿈같은 블루스 (Dreamy Blues)’였습니다. 명칭이 ‘Mood Indigo’로 바뀐 이 곡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블루스 곡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고, 여전히 연주되고 있습니다.

Mood Indigo."

오케스트라는 각 개인이 모여 팀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협조와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듀크는 각 멤버들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잘 활용해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1920년대와 30년대, 댄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한 그룹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이 그룹 저 그룹으로 옮겨다녔습니다. 그러나 듀크 엘링턴의 악단에 오면 여러 해씩 머물렀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악단의 연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듀크는 단원의 특기에 잘

맞는 곡들을 작곡했습니다. 한명이나 두명의 연주자를 두드러지게 하고 나머지 악기들은 이들을 보조해주는 기능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같은 협조방식은 엘링턴의 특징이었고, 아름다운 음과 색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음악은 사람들을 행복, 슬픔, 고독, 환희 등 깊은 감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몇몇 연주자들은 당시 미국 최고의 재즈 음악인들이었습니다. 이들과 단원들과의 조화로운 연주는 다른 어떤 악단도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같은 소리를 내려면 처음 그 곡을 연주했던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고는 실현될수 없었습니다.

그런 음악가 중 한명이 쿠티 윌리암스(Cootie Williams)였습니다. 그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서 여러해 동안 트럼펫을 연주했습니다. 듀크 엘링턴이 작곡한 쿠티스를 위한 콘체르토는 쿠티 윌리암스의 장점을 잘 살려 만든 것이었습니다.

음악 Cootie Williams 연주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작곡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멤버들 간의 융합을 아주 잘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듀크 엘링턴은 쉬지 않고 작곡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밤이나 낮이나, 버스에서나 비행기 안에서나 작곡을 했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그가 2천곡은 작곡했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음악: "Four-Thirty Blues."

이 노래는 ‘4: 30블루스 (Four-Thirty Blues)’입니다. 러셀 프로코프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가운데 엘링턴이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에서 프로코프는 자기 연주 차례가 오면 그때마다 다르게 소리를 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이 오늘날 까지 누구도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흉내낼 수 없는 특징입니다.

엘링턴은 여러가지 새롭고 특이한 방식으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는 과거 아무도 시도해본적이 없는 색다른 악기를 그룹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 소리 처럼 이용한 첫 자곡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수를 위해 작곡은 했지만 가사는 쓰지 않았습니다.

음악: Creole Love Call

이 음악은 애들레이드 홀이 부르는 ‘크레올 러브콜 (Creole Love Cal1)’입니다.

듀크 엘링턴은 20세기 가장 인기있는 음악인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비평가들은 그가 피아노 연주자로서 보다 작곡가와 오케스트라 리더로서 더욱 훌륭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빌리 스트레이혼은 “듀크는 피아노를 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악기는 바로 오케스트라 자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듀크 엘링턴의 첫사랑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큰 규모 악단의 인기가 떨어지자 듀크는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단원들에게 보수를 주었습니다. 듀크에게 오케스트라는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언제나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좋게 하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작곡가들과 같이 그도 지나간 노래를 끌어내 편곡하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후반기에는 앨 히블러 (Al Hibbler)라는 가수가 오케스트라에 합류했습니다. 그러자 듀크는 Concerto for Cootie라는 곡에 가사를 새로 붙이고, 곡목도 ‘내가 말 할때 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Do Nothing 'Till You Hear From Me)로 바꾸었습니다. 이 두곡은 모두 큰 힛트를 기록했습니다. 앨 히블러의 Do Nothing 'Till You Hear From Me입니다.

음악:

듀크 엘링턴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공연을 했습니다. 청중은 수백만에 달했고, 그와 함께 연주를 한 음악가는 8백명이 넘었습니다. 의사로부터 폐암 선고를 받고도 그는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종교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여러 나라로부터 영예 훈장과 표창을 받았습니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자유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세계 여러 지도자들은 그에게 감사의 서신을 보냈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75세 생일을 맞은 후 한달도 못된1974년 5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폐암과 폐렴 합병증이었습니다. 재즈의 전설인 그가 떠나가자 미국에는 수 많은 공공시설이 그의 이름으로 개명되고 그를 기념하는 음악회들이 연례 행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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