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카작스탄 남부 초원지대. 대형 낙하산에 매달린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 호가 착륙했습니다.
소유즈 호에는 국제 우주 정거장, ISS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3명의 우주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안톤 슈카플레로프와 표트르 두브로프, 그리고 미국 우주인 마크 밴더헤이였습니다.
마크 밴다하이는 355일을 우주에 머물며 미국인으로서는 최장기 우주 체류 기록을 수립하고, 수 많은 연구와 실험으로 장차 인간의 우주 여행에 큰 기여를 한 우주인입니다.
미 항공우주국 NASA 소속 우주인 마크 밴다하이는 러시아 연방우주공사, 즉 로스코스모스 소속 우주인들과 함께 지난해 4월 러시아의 소유즈 MS-18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갔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 약칭 ISS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국적 우주 정거장입니다. 월드 컵 축구장 만한 이 인공위성에는 항상 3명내지 5명의 우주인들이 연속 체류하면서 각종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크 밴다하이가 우주에 체류한 기간은 일년에서 열흘이 모자라지만, 그에 앞서 스콧 켈리의 기록인 340일을 15일 초과해 우주 연속 체류 미국 신기록을 수립한 것입니다. 그는 이번이 두번째 우주 여행으로 첫번째 여행시간까지 합하면 총 523일을 우주에 체류한 기록을 갖게 됩니다.
마크 밴다하이는 카작스탄에 내린 다음 날인 31일 항공주우주국 제트기 편으로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로 복귀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마크 밴다하이는 환영나온 가족과 우주 센터 동료들의 박수에 활달한 모습으로 두 팔을 들어올리며 돌아와 기쁘다고 화답했습니다.
밴다하이는 우주정거장에 있는 동안 지구 주위를 5천 680바퀴나 돌았습니다. 지구에서 달을 312번이나 왕복한 거리에 해당됩니다.
지구로 돌아온 밴다하이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최장기 우주체류 기록을 수립한 건 맞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장차 지구를 벗어나 더욱 먼 우주를 탐구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었다는데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밴다하이를 포함한 우주인들은 장기간 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앞으로 달과 화성, 그리고 더 먼 우주 여행을 위한 장기간의 우주 체류에 대비하는 과학적 연구와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밴다하이는 우주에서 매일같이 60건에서 100가지의 연속적인 실험이 실시됐고,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과 지식의 투자는 미래의 우주 개발에 놀라운 기여를 하고 있고 설명했습니다.
밴다하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를 확인하는 각종 샘플과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우주 여행중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조사했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의 활동 수준은 어느 정도가 표준일지, 빛의 노출이 취침과 기상에 어떻게 영양을 미치는지도 조사했습니다. 승무원 각자의 혈액과 침의 샘플도 수집해 무중력 상태에서의 각종 호르몬, 프로테인, 세포 등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도 더욱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는 준비도 했습니다.
밴다하이는 장기 우주 체류에는 체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기 필수적이기 때문에 무중력 상태에서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장기 체류를 하고 온 자신의 몸도 연구를 위한 실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자신의 몸에서 나온 데이터가 앞으로의 우주 탐험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밴다하이는 우주에서의 식생활 변화에 따른 연구를 실시한 최초의 우주인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을 때 그것이 얼마나 우주인들을 질리게 하고 식욕감소, 영양결핍, 신체조직 손실 등을 가져오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런 자료는 미래의 새로운 우주 식품을 만들 수 있는 연구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미래 우주 탐험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식량 자체조달입니다. 밴다하이는 우주정거장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는 우주선 안에 마련된 통에서 고추가 열린 것을 보고 너무나 환상적이었고, 또 그것을 따먹어, 우주에서 얻은 또 하나의 보너스였다고 말했습니다.
밴다하이는 1966년 11월 10일, 워싱턴 디시 외곽 도시인 버지니아 주위 폴스 처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미네소타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습니다. 명문 세인트 존스 대학교에서의 전공은 물리학이었습니다. 이어 1999년 캘리포니아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응용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을 마친 후에는 미 육균사관학교에서 물리학 부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밴다하이는 ROTC 교육을 받고 미 육군 전투공병대 장교가 됐습니다. 1991년에 시작된 걸프 전 때는 쿠루드 족 대피작전인 Operation Provide Comfort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2003년에는 피터슨 공군기지에서 육군 제 1 우주대대에 배속으며, 이라크 자유작전에도 참전했습니다. 그는 2016년 대령으로 전역했습니다.
밴다하이가 미 항공 우주국 나사와 인연을 맺게 된건, 육군 장교로 있던 2006년 존슨우주센터에서 복무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존슨 센터에서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과 교신을 하는 비행 통제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에는 제 20기 나사 우주인 반에 선발돼 2014년까지 지구 밖으로의 여행에 필요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여러가지 힘든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나사는 그를 국제우주 정거장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맨 처음 떠난 우주 여행은 ISS 탐사 53/54 계획에 따른 것으로, 2017년 9월 러시아의 소유즈 MS-06을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날아갔습니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밴다하이는 사령관 랜디 브레즈닉과 함께 처음으로 우주유영을 하고 캐나다가 제작한 로보트 팔 ‘캐나담2’를 교체했습니다. 거의 7시간에 달하는 오랜 작업이었습니다.
2018년 2월에 지구로 돌아온 밴다하이는 다시 2021년 3월 2차 우주 여행을 떠났습니다. 본래의 계획은 6개월 체류였으나 도중에 계획이 바뀌어 6개월이 연장돼, 지난 3월 약 1년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밴다하이의 임무가 끝나갈 무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참혹한 전쟁 소식은 멀리 떨어진 우주정거장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우주인들은 여전히 임무에 충실한 친구들일 뿐, 그것으로 관계가 불편해 지지는 않았습니다.
밴다하이는 구태어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고, 러시아 우주인 슈카플레로프는, 우리는 우주의 형제 자매들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는 돌아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 사람들이 더 오랜 기간 우주 여행을 하기를 기대하며 자신은 단순히 그런 미래를 위한 디딤돌의 존재로 남기를 바랄뿐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