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미국인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북한 국내총생산 GDP의 16배에 달하는 4천 700억 달러를 해마다 기부하는데, 미국 내 탈북민들은 정착 초기 이런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며, 기부 문화는 미국의 저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가 24일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자 다음 날 미국의 많은 비영리 자선단체와 기부 전문 웹사이트는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USA투데이’, ‘NBC’ 등 많은 주류 언론은 스마트폰 앱과 웹사이트,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 대중의 자금 조달을 연결하는 크라우드펀딩 정보 등을 소개하며 미국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울 방법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글로벌기빙(Global Giving) 등 여러 단체는 모금 사이트를 연 지 하루 만에 수십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CNBC’ 방송은 암호화폐(Crypto)를 통한 기부가 25일 4백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국 군대에 대한 기부를 전 세계에 호소하면서 ‘Army SOS 시민 구상’ 같은 단체는 탄약과 군복, 식량, 의약품 등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며 모금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또 1천 100만여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 유튜버 등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도 개별적으로 기부를 적극 독려하고 있습니다.
[녹취: Wood Hawker 인터넷 방송] “while we're streaming today, we're also going to be raising money for the Ukraine crisis appeal. There's going to be a link in the chat. It's a total filing, everything goes straight through to Red Cross,”
미국에서 이런 기부 운동은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미국의 공공 자선기구인 전미자선신탁(NPT)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총 4천 714억 달러를 나라 안팎에 기부했습니다.
이는 한국 통계청이 추산한 2020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즉 북한에서 이 시기에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합한 금액 34조 7천억원, 미화 289억 달러의 16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미국은 특히 기부를 일부 부자나 기업, 재단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의 75%가 적어도 해마다 1회 이상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미자선신탁(NPT)은 홈페이지에서 2020년 기준으로 개인이 기부한 금액이 3천 241억 달러에 달해 전체 기부액의 69%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많은 억만장자도 기부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달 미국의 억만장자 가운데 가장 많이 기부한 25명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금까지 461억 달러를 기부해 기부왕으로 뽑혔습니다.
또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이혼한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334억 달러,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181억 달러, 블룸버그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127억 달러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오픈더북스(OpenTheBooks.com)는 지난해 발표한 ‘외국 원조’ 보고서에서 미국 납세자들이 2013~2018년 사이에 총 2천 826억 달러를 외국에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는 특히 지난 2020년 회계연도에 해외 경제와 군사 원조로 총 51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의회에 보고한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기부 문화가 가장 활발한 이유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약자를 돌보는 기독교 문화, 기부금에 대한 소득 공제 혜택,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과 신뢰 등을 꼽습니다.
최근 빈부 격차가 커지고 기독교 등 온정을 베푸는 문화가 약화하면서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계속 나오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 전문지 ‘사이컬러지 투데이’는 미국인들이 기부하는 가장 큰 심리적 이유로 사회 구성원이 결국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회적 역학관계에 대한 믿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기부를 즐기는 ‘이타주의’ 정신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탈북민들은 이런 미국 문화가 북한에서 배운 것과 너무 판이해 큰 충격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제3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아 10년 전 미국에 입국해 중서부 도시에서 원예 사업을 하는 글로리아 씨는 25일 VOA에, 정착 초기 이런 기부 문화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씨]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고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donation 문화 자체에 놀랐어요. 왜 하지? 이해를 못 했어요. 저도 도네이션을 받아봤지만 왜 주지? 받긴 받는데 내가 이걸 받아서 쓰는 게 맞는지? 이상한 의도가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되니까. 그냥 해 준다는 자체가 저희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죠.”
아무 대가 없이 베푼다는 것이 기부 문화 자체가 없는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해 의심까지 했다는 겁니다.
글로리아 씨는 그러나 이런 사랑과 나눔을 통해 사회가 더 풍성해지는 것을 확인한다며 이것이 “미국의 진정한 저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씨] “나눔을 통해 사랑이라는 게 오간다는 게 굉장히 감동이죠. 또 그런 문화를 통해 저도 조금 여유가 생기니까 저도 처음에 와서 받았으니까 나도 여유가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풍성해지는 것.”
제3국에 체류 중인 북한 청년 J 씨는 VOA에, 북한을 떠나 외국에 나와야 비로소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북한 당국은 미국인을 모두 ‘승냥이’, 미국은 철저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로 가르치고 있어서, 지금도 북한 사람들은 미국인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겁니다.
[J 씨] “우리 북한 사람들은 다 미국 사람하면 다 승냥이로 알고 있습니다. 약육강식, 정말 넘어지면 내려와서 짓밟아 죽이는 그런 사회로 알고 있는데, 솔직히 미국 시민들이 길바닥에 누가 쓰러지면 앰뷸런스 부른다든가, 그런 것에 대해 상상도 못 하죠.”
하지만 북한 밖으로 나와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와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한 미국은 약자를 돌보고 자국민뿐 아니라 많은 빈곤국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는 겁니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허강일 씨는 25일 VOA에, 몇 년 전 “암에 걸린 미국 내 탈북 여성을 돕는 모금 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10만 달러가 걷히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도 일부 빈곤층 문제 등 그림자가 있지만, 인간을 존중하고 베푸는 문화가 근본적으로 북한과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저도 뉴스나 이런 것을 보면서 진짜 어려운 사람들 있으면 미국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인데 왜 북한 정권은 미국을 세상에서 남의 나라를 침략만 하고 자원을 뺏는다고 우리 북한 사람들한테 계속 세뇌 교육을 시키는지, 실제는 영 반대다, 전 세계 군사 경제 강국인 미국의 본보기를 북한 엘리트들이 좀 알고 공부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남부에 사는 북한 무역회사 간부 출신 아브라함 씨는 미국의 풍부한 기부 문화는 기독교 문화와 직결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녹취: 아브라함 씨] “기독교 문화라고 볼 수 있죠. 네 소산의 10%를 하나님에게 바쳐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고 하듯이 부자들도 돈이 축적되면 난민이나 이런 데 기부하고, 북한에도 기부하잖아요. 지원 물자도 보내고. 여기 사람들은 착한 마음으로 하고, 그걸 악용하는 것은 저 북한 정권이고,”
실제로 미국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인도주의 지원을 가장 많이 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1995년 이후 약 13억 달러 상당의 식량과 물품을 북한에 지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