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인물 아메리카] 상어 보호운동가로 변신한 '조스' 작가, 피터 벤츨리


[인물 아메리카] 상어 보호운동가로 변신한 '조스' 작가, 피터 벤츨리
please wait

No media source currently available

0:00 0:09:59 0:00

VOA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조스' 유명 작가에서 상어 보호운동가로 변신한 미국 작가 피터 벤츨리의 이야기입니다.

피터 벤츨리는 소설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습니다. 그는 해양 생물 보호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그의 소설과 영화 조스 (Jaws)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어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과 증오심을 가져다 주었으며, 해변 휴양지 주민들의 생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가져온 여러가지 부작용을 보게 되면서 나머지 30년의 인생을 오직 상어와 바다 생물 보호운동에 바쳤습니다.
피터 벤츨리
피터 벤츨리

하바드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피터는 대학 졸업 후 워싱턴 포스트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편집인으로 일했습니다. 저널리즘의 감각을 갖춘 그가 이들 두 언론사에서 일한 것은 장차 작가로서의 생애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1967년 피터 벤츨리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발탁됐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1969년 그는 부인과 함께 뉴저지로 자리를 옮겨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기행문, 영화평론, 텔레비젼 물, 뉴스 쟁점 등 수입을 위해 무엇이든 썼습니다.

피터는 친구들과 함께 동북부 해안의 조그마한 섬 낸터킷트(Nantucket) 로 낚시를 다녔습니다.그곳에서 자주 눈에 띄는 상어에 그는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헤엄치는 상어의 지느러미가 물위를 그으며 지나다니는 모습은 늘 그의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1960년 벤츨리는 롱 아일랜드 해안에서 거대 백 상어를 잡은 한 어부의 이야기를 읽게 됐습니다. 그는 여름 철 호항을 누리는 낸터킷트와 같은 휴양지에서, 저런 상어가 나타나 계속 맴돌면 인명과 그 지역 경제에 피해가 얼마나 클까를 생각했습니다.

1971년 텔레비젼과 신문에 글을 쓰는 동안 그는 여름철 휴양지를 파멸시키는 상어 이야기 구상에 집중했습니다. 아버지 한테서 배운대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야기가 바로 조스 (jaws)였습니다.

미국 북동부 해안 작은 섬 마을 ‘애미티’에서 여러 사람이 거대한 백 상어의 공격을 받고 희생되자 경찰관이 사투를 벌여 끝내는 상어를 죽인다는 줄거리입니다.

피터 벤츨리는 자신의 첫 소설 조스가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고 더구나 사람들은 작가의 첫 작품은 재미가 없어 안 읽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소설 출판 전부터 영화화 이야기가 있었지만 더욱이 그걸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상어를 훈련시킬 수도 없고, 아무리 헐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거대 백상어를 사실적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비관적 전망은 1974년에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그 해 출판된 소설 조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설은 44주 동안이나 미국의 베스트 셀러 자리를 차지했습니다.소설 조스는 미국 내에서 9백여만 부,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이나 팔렸습니다.

영화 제작도 본격화됐습니다. 영화사는 벤츨리에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았습니다. 배급사는 유니버살 픽쳐스였습니다. 드디어 1975년 6월 20일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제작비 9백만 달러가 들어간 이 영화는 입장료 수입만 4억 7천 2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1977년 스타워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의 흥행기록이었습니다. 조스는 세계 영화사상 최고흥행작 10편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와 같은 성공의 여세를 몰아 조스 2편도 나왔습니다. 1편 만은 못했지만 2편도 입장요료 수입 2억달러를 넘길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조스 3D영화도 나왔습니다.

피터 벤츨리는이 외에도 여러편의소설과 논픽션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버뮤다의 해저 보물 탐사 이야기인The Deep, 해적의 이야기 The Island 가 그중 일부입니다.
그의 소설과 영화 조스는 많은 인기를 끌면서 동시에 상어 공포증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는 걸 무서워하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상어로 인해 죽는 사람보다 소에 다쳐 죽는 사람이 더 많다며 과장된 상어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피터 벤츨리
피터 벤츨리

해안 지대 관광지의 경제는 크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상어의 무차별 남획으로 인한 멸종 위기도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고민을 하게 된 벤츨리는 상어에 대한 바른 인식을 교육하고 상어를 보호하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해양 보호운동가로 만든 결정적인사건은 코스타리카 부근 코코스 (Cocos) 섬 바다 속에서 발견한 상어의 폐기장이었습니다. 그는 해저를 탐사하다 엄청나게 많은 상어 시체가 버려져 있는 금찍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바다 밑에는 죽은 상어가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지느러미 요리나 고기, 기름 등을 위해 희생된 상어들이었습니다.

밀렵꾼들은 단속반에 들키지 않기 위해 상어를 잡으면 지느러미만 잘라낸 뒤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지느러미를 잃은 상어들은 결국 피를 많이 흘린채 헤엄도 칠수 없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죽어갔습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1년 동안 상어 지느러미 요리와 고기, 기름 등을 위해 희생되는 상어의 개체 수는 1억마리에 달하고 있습니다.

벤츨리에게는 자신이 쓴 소설과 영화가 상어 사냥에 불을지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는소설을 쓴걸 후회했습니다. 벤츨리는 소설과 영화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상어를 비롯해 바다 전체의 생물체 보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상어잡이 금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글과 미디어 출연, 강의등을 통해 상어 멸종이 가져올 위험성을 일깨웠습니다. 벤츨리는 상어가 없으면 바다의 먹이 사슬은 완전히 망가진다고 강조했습니다.

벤츨리는'샥스핀' 요리의 재료인 상어 지느러미 남획을 막기 위한 국제 시민운동단체인 와일드에이드에도 가입했습니다. 벤칠리는 "어떤 종류는 90%까지 감소한 상태" 라며 "상어 지느러미 거래 규제와 남획 실태파악 등 각국 정부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고 역설했습니다.

최근 몇년 동안 상어 고기의 거래는 엄청나게 늘어났고,연골이나 오일 등 상어 제품 판매도 늘어났습니다. 상어 제품의 거래 규모는 연간 1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적으로 상어의 70%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그는 부인 웬디와 함께 피터 벤츨리 해양상을 제정했습니다. 벤츨리 해양상은 매년 바다 생물 보호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어를 비롯한 바다 생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인간에 의한 바다의 파괴 위험을 교육시키는데 나머지 인생을 바친 그는 2006년 66세로 타계했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가 시작한 바다 보호 운동은 오늘도 여러 나라의 바다와 육지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