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인 북송 피해자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원고 5명은 북한 정권의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북한에서 고통받은 삶을 변론하며 북한에 남은 가족과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정권의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갔다가 탈출해 일본으로 돌아온 재일 한인 피해자와 가족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이 14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들이 지난 2018년 첫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에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 일본에서 처음 열린 겁니다.
원고 중 한 명인 올해 79살의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재판 뒤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5명 모두 변론을 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스러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가와사키 씨] “감개무량합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모두가 변론할 때 눈물을 흘렸어요. 정말 3년이면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갔는데 정말 어렵고 힘든 고통을 거쳐 일본으로 왔습니다.”
이날 재판은 원고 측 변호사가 재판장과 판사들 앞에서 피해자 5명에게 질문해 변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피고인 북한 정부 측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원고 측 후쿠다 켄지 변호사와 피해자들은 사실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그러나 재판에서 승소해도 손해 배상 요구액 1인당 1억엔, 미화 90만 달러를 받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재판을 통해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라도 법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고,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향후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북송 피해자 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상봉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17살이었던 1960년에 홀로 북송선에 올라 북한에서 43년을 살았던 가와사키 씨는 이날 변론에서 두 가지 목적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가와사키 씨] “북송선을 타고 간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 살아계신 분들과 그 배우자들, 또 2세, 3세까지 일본만이라도 좋으니까 자유 왕래를 시켜달라는 것! 두 번째 요구는 내가 살아서 북한에 남기고 온 자식과 손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북송사업은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됐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이 북송사업을 납치와 강제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 중 하나로 분류했습니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북한의 지상낙원 선전을 믿고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과 가족이 25년간 9만 3천 340명이며, 이 가운데 1천 831명에 달하는 일본인 아내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본 적십자사의 지원 속에 이 사업이 이뤄졌으며 피해자들은 북한 정부의 지상낙원이란 선전에 속았다고 지적했습니다.
3년 전부터 이 소송을 적극 지원한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도이 카나이 일본 담당 국장은 이날 성명에서 “원고인 피해자들이 변론에서 북한이 지상낙원이 아닌 지옥이었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은 북송 피해자와 가족의 일본 복귀를 즉각 허용하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재판은 기시다 총리의 일본 중의원 해산과 수억조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 제시 등에 묻혀 일본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민간단체인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에키 히로아키 대표는 앞서 VOA에, 일본 주류사회에서는 북송 피해자들이 자진해서 북한으로 갔고, 일본 내 친북 단체인 조총련 간부들이 일본 공산당과 연대해 사회주의 혁명 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귀국자들에게 동정심이 적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날 변론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 30분에 종료됐으며, 재판부는 내년 3월에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원고 측은 승소를 확신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 국회에 북송 피해자 구조법안 발의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