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른 중국과의 국경 봉쇄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북한이 오히려 방역의 고삐를 더 죄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변이 바이러스 출현 등으로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지속되면서 국경 봉쇄를 풀 수도, 경제난을 방치할 수도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2일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세계적인 대유행 전염병 사태가 계속 확산되는 위험한 형세는 국가적인 방역대책을 더욱 강화해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며 “방역전선을 다시 한번 긴장시키고 각성시키기 위한 일대 정치공세와 집중공세를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국제백신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로부터 배정받은 중국 시노백 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다른 나라에 양보한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방역 태세를 더욱 강화하는 양상입니다.
김 위원장은 또 “올해 농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하고 식량 문제 해결에서 돌파구를 열기 위한 당 중앙위원회적인 조치”를 지시하며 올해 계획한 알곡 생산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라는 과업을 제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그러나 ‘당 중앙위원회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신종 코로나 방역을 위한 중국과의 국경 봉쇄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북-중 국경 통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리룡남 중국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달 30일 자오커즈 중국 공안부장을 베이징에서 만나 접경지대 안정을 공동으로 지키자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북-중 접경도시인 지린성 바이산시와 랴오닝성 단둥시의 경우 불법 입국자 신고에 포상금을 거는 등 최근 탈북민 단속을 강화하는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북-중 접경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무역일꾼들 사이에선 신종 코로나가 진정 국면을 보였던 올 봄부터 꾸준히 돌았던 북-중 무역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중 교역에 대한 기대감은 7월만 해도 8월이면 반드시 연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들이 많았는데요. 8월 들어선 못 연다, 금년 내에도 열기 어렵다, 또 심하게 얘기하면 내년 이맘때 가야 된다 이런 얘기까지 단둥 또는 북-러 접경지역 무역일꾼들 사이에 돌고 있거든요.”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도 현지 무역업자들로부터 국경 봉쇄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전해 듣고 있다며, 다만 중국 당국이 밀무역을 철저하게 단속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작은 규모의 음성적인 교역들이 진행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 당국의 지침에 따라 중국 업자들과 평양 1만호 주택건설 자재나 식량 등 생필품 계약에 나섰던 북한 측 무역일꾼들이 봉쇄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 소장은 무역일꾼들이 자칫 계약 취소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지만 당국의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현지 무역 관계자들은 계약을 해놓고, 그런데 계약이라는 게 시한부가 있어서 보통은 지나가면 위약금을 물든지 무효가 되든지 이렇게 되는데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평양 쪽에선 계속 계약을 하라고 하고 준비를 하라고 하는 상황이니까 이게 뭐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확실한 답이 없어서 안타까운 소리를 하거든요.”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당 정치국 확대회의 발언은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북한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방역과 식량 확보를 강조하면서 대외 문제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자력갱생으로 버텨보겠다는 의지도 달리 방법이 없어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 상황에서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들이 보이지 않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 자력갱생에 집중하겠다는 악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오히려 그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 더욱 수세적 선택을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닐까 그렇게 봐요.”
국경 봉쇄를 풀자니 신종 코로나 방역이 뚫릴 수 있고, 봉쇄를 계속하자니 경제 위기가 깊어지는 딜레마라는 설명입니다
조충희 소장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절도사건들이 북한 내부에서 늘고 있다며 청년층 등에서 동요가 생길 가능성에 북한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지금 젊은층 속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있어서 북한 당국이 엄청 젊은층에 대해서 통제하고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장에서의 공급이 안되고 국가배급이 이뤄질 가망은 거의 없는 것이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주민들의 동요가 더 크게 일어나지 않겠나.”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 이후 모종의 군사 동향은 물론 이렇다 할 대외 비난이 없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조 박사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북한을 장기 고립에 빠뜨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한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고 나선 오히려 대남 비난이 좀 수그러들고 있거든요. 이번 정치국회의에서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심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에서 성과를 원하고 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북한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조직 문제’가 취급됐다고 전했으나 인사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