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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세계적 부호 세계적 자선, 워런 버핏


[인물 아메리카] 세계적 부호 세계적 자선, 워런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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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은 세계 최고 부자의 한사람입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0년 3월 버핏의 순자산을 720억 달러로 평가하며 그를 세계 3위의 부자로 꼽았습니다. 이 전문지는 1993년에는 버핏을 세계 1위로 평가한바 있습니다.

네이버도 2018년 그의 순자산이 871억 달러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부자라고 보도했습니다. 주식 가격 변동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지만 경제전문지들은 거의 언제나 그를 1위에서 10위 사이의 부호로 꼽고 있습니다.

워런 에드워드 버핏은 1930년 8월 30일, 미국 중부지방인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증권 거래인이었고, 미국 연방 하원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워런은 1남 3녀중 둘째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돈벌이에 남다른 흥미와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뉴욕 증권 거래소를 드나들며 투자를 배웠습니다. 워런은 11살에 처음으로 3매의 주식을 샀습니다. 시티서비스 프리퍼드(Cities Service Preferred)라는 도시 지분 우선주를 각각 38달러에 구매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가가 27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워런은 그 주식을 팔지 않고 기다리다 40달러로 오를때 매각했습니다. 매각하고 나니 그 주는 거의 20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워런은 그 주식을 팔아버린 것을 후회했으나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워런은 그때의 경험이 큰 교훈이었다며 투자에는 장기전을 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워런 버핏은 친구와 함께 게임 기구인 중고 핀볼 기계를 25달러에 사 이발소에 배치했습니다. 두어달이 되자 그 기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기계를 몇대 더 사고, 세 군데 이발소에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은 그 사업을 천 200달러에 매각했습니다. 불과 몇달만에 25달러 짜리 사업이 48배나 커진 것입니다.

워런의 아버지는 1942년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고 가족은 의정활동에 편리하도록 워싱턴에서 가까운 버지니아 주 프레드릭스버그로 옮겼습니다. 워런 버핏은 위드로우 윌슨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6살에는 명문 펜실배니아 대학에 들어가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2년후 그는 네브라스카 대학으로 옮겨 학위를 받았습니다. 1951년 버핏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경제학자 벤자민 그레이엄 교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1956년 워런 버핏은 고향 오마하에 버핏 파트너쉽 제한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레이엄 교수로부터 배운 분석방식을 사용해 버핏은 저평가된 기업들을 찾아 투자했습니다. 그런 기업중 하나가 직물기업 버크셔 하사웨이(Berkshire Hathaway)였습니다.

버핏은 1960년대 초 이 기업의 주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1965년에는 경영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버핏은 이 기업의 직물 생산 부분을 제거하고 투자회사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버크셔 하사웨이는 버핏 기업활동의 사령탑이 됐습니다.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 등 미디어 주식과 보험사, 석유회사 등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오마하의 신탁받은 예언자라는 뜻으로 "Oracle of Omaha"로 불리우던 버핏이지만, 금에 대한 투자와 스캔들로 얼룩진 기업을 매입하는 등 실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버핏은 코카콜라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막대한 투자로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코카콜라 사의 이사로 활약하면서 국제 금융회사, 교육, 미디어 그룹, 미용제품 업체 등에 투자하며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워런 버핏은 2012년 전립선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고 약 5개월 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도 80대 노장의 기세를 억누르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해 버핏은 크래프트 푸드를 합병해 북미주에서 세번째로 큰 식품 기업을 갖게 됐습니다. 건전지 기업 듀라셀도 사들였습니다.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3년 버핏은 하루 평균 3천7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이는 미국의 정상급 여배우가 1년동안 번 것보다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2017년 버핏은 컴퓨터 기업 IBM의 가치가 6년전과 같지 않다며 갖고 있던 주식을 대폭 매각했습니다. 그 와는 반대로 다른 컴퓨터 기업 애플의 주식을 더욱 많이 사들였습니다. 또 그는 은행인 Bank of America의 최대 주주가 됐습니다. 2018년 1월 버크셔 하사웨이 사는 JP 모건, 애마존과 함께 새로운 의료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헬스케어 벤처 ‘헤이븐(Haven)’을 설립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최근 버핏은 산하에 있는 미국 제 2위의 부동산 종합 서비스 기업인 HomeServices of America Inc.,를 1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과감한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버핏은 또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트, 사우스웨스트 등 4개 항공사의 주식을 매각처분했습니다. 이들 항공사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물러간 이후 과거 수준으로 완전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처럼 투자의 시기와 전략이 뛰어난 사업가라고는 하지만 그의 자산 99%는 50세 이후에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그는 ‘대기만성’형입니다. 버핏은 이 처럼 돈을 버는 명수이지만 돈을 주는데도 통이 큽니다. 버핏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선을 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006년 6월, 워런 버핏은 자신의 전 재산을 자선사업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중 85%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자선기구인 빌 앤드 멜린다 기금에 제공됐습니다. 버핏의 이 기부는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자선 금액이었습니다. 2010년 버핏과 게이츠는 공동으로 더 많은 부호들을 자선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한 기부서약 운동, The Giving Pledge 를 출범했습니다. 기업가들의 이 운동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2018년 8월 현재, 기업가이자 정치인인 마이클 블룸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컴퓨터 재벌 래리 앨리슨을 포함한 22개 국가 184명이 넘는 부자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거대 재벌이면서도 워런 버핏의 생활은 무척 검소하고, 행동도 유별나지 않습니다. 네브래스카에 있는 그의 집은 총 재산의 0.01%에 불과하며 그는 매일 맥도날드로 값싼 아침 식사를 때우고 있습니다.

버핏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백과사전이 있습니다. 그는 하루 중 80%를 독서로, 그리고 약간은 카드놀이인 브리지 게임을 하는데 보내고 있습니다.

버핏은 76세인 2006년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아스트리드 멘크스와 결혼했습니다. 버핏은 1952년 첫 부인 수전 톰슨과 결혼했으나 1970년대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수전은 2004년 사망했습니다. 버핏은 수전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버핏은 일생을 돈을 버는데 바쳤고 또 거부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이 곧 성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버핏은 기회 있을때마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들,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당신을 겪어보고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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