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송환한 미군 유해 중 11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도발 등으로 중단을 반복해온 유해 송환의 지난 과정들을 김카니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이 지난해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55상자를 송환한 뒤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미국인은 11명입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은 7천 800여명에 달하며, 이 중 5천여명이 북한에서 실종됐습니다.
북한이 처음으로 유해를 송환한 것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8월입니다.
당시 미군 유해 2천 900여 구를 포함한 유엔군 전사자 4천여 구를 송환했고, 이후 유해 반환을 일절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지속적인 송환 요구에 미-북 양측은 1990년에 다시 이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고, 1993년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1990년 판문점을 통해 미군 유해 5구를 송환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 사이 독자적으로 발굴한 유해 400여 구를 208개 상자에 넣어 송환한 바 있습니다.
이 중 미 국방부는 올해 7월 현재 미군 186명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양측은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에 따른 후속 협상을 통해 1996년 1월 공동 유해 발굴단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공동 발굴단은 1996년부터 2005년 사이 총 33차례에 걸친 작업을 통해 미군 유해로 추정되는 229구를 발견했으며, 이 중 156명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 북한이 6자회담 참가를 중단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면서 공동 발굴 작업은 중단됐습니다.
여기에는 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상황에서 발굴 비용을 명목으로 북한 군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이후 2년 만인 2007년 발굴 작업이 재개됐고, 그 해 4월 7구의 미군 유해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안전 문제로 발굴 작업이 중단됐고, 2011년 다시 재개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로 또 다시 중단됐습니다.
이후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 이후 11년 만에 유해 55 상자가 송환됐지만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유해 발굴 계획에는 또 다시 차질이 생겼습니다.
2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이후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DPAA는 올해 북한과의 합동 유해 발굴 작업 재개를 위한 노력이 중단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DPAA는 2020회계연도 중 유해 공동 발굴 일정을 잡기 위해 북한 인민군과 소통을 재개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북 협상이 재개되기 전에는 발굴 작업 재개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카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