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 간 ‘친서 외교’가 하노이 회담 이후 단절된 양국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의 친서 공개 시점이 북-중 정상회담 직후라는 점은 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담겼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안소영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내용과 함께 김 위원장이 이를 직접 읽어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했고,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1일과 17일 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답고 멋진 친서’를, 또 ‘생일축하 편지’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청와대는 미-북 간 친서 교환을 환영했습니다
친서가 미-북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한국 정부는 미-한 간 소통을 통해 친서 교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고비마다 ‘친서 외교’를 벌여 온 미-북 정상이 이번에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이어진 양국 간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 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북 정상 간 친서는 양국이 여전히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과 북한 측에서 대화 기조를 이어간다는 취지에서 친서 외교를 하는 것이고, 대화가 계속 진행되는 데 있어 (친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신 센터장은 이어 북한이 이례적으로 친서를 공개하고 “흥미로운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막힌 미-북 실무 협상 재개를 시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미국이 계속 제안해 온 실무 협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 재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북한 스스로 친서를 공개한 만큼 이번에는 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신 센터장의 분석입니다.
그러면서,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발언과 더불어, 답보 상태에 빠진 미-북 대화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중동 지역 순방길에 오른 폼페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확인하고, 북한이 통보하는 즉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도 24일 VOA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는 실무진 간 만남을 유인하는 미국의 제안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도 이제 ‘톱 다운’만을 고집하며 미국의 제안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강인덕 전 장관] “영변 핵 폐기 보다는 더 나아가는 제안을 하면서 실무자 회담에서 서로 여러 가능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려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2월에 톱 다운 방식으로 이미 회담이 결렬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실무자 회담을 하자, 북 쪽에서도 이제는 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구체적인 핵 신고서 제출을 시작으로 협상에 나서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강인덕 전 장관] “어떻게 보면 ‘빅 딜’로 시작해서,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스몰 딜’ 플러스 알파라고 할까요? 좀 더 (포괄적으로) 해 나가자 그런 것이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이번 친서 교환은 양측 간의 간극 조율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한 전 차관] “미국 입장에서는 3차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북한의 기대보다는 높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주고, 북한 입장에서는 실무 협상에 대해 전혀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었는데 이번 친서를 통해서 실무회담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 전 차관은 북한이 실무회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미국과의 3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노이 회담’에서 깨달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북 정상 간 친서가 양국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단기적 요인은 될 수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로까지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로버트 겔리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 북한이 포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또 미국의 어떤 상응 조치를 원하는지 등의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 그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아부용’에 그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켈리 교수] “Unless the letter contains very specifics what the North Koreans want to give up and what they want for Americans to return and I think it is just kind of flattering...”
그러면서 친서의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미-북 간 현상유지를 위한 관리 차원의 일환으로 해석될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전 차관도 친서 교환이 3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담긴 실무회담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공개 시점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직후 이뤄졌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역할을 하겠다는 중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겁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시진핑 주석의 방북도 북한 매체와 중국 매체 보도 내용을 보면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부분을 강조한 반면, 북한 매체는 그런 부분의 의미를 축소했어요. 비핵화라는 말도 담겨 있지 않고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친서를 이 시점에 공개한 것도 북한 나름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접근을 보인 것으로 평가합니다.”
신 센터장은 이어 미국도 중국의 중재 역할을 반기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청와대는 오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밝혔습니다.
3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미-한 동맹 공고화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양국 간 공조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를 전후한 미국과 한국, 중국 북한의 연쇄 정상회담과 미-북 간 친서 교환 등으로 6월 한반도 시계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