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의 하노이 시민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거의 아픔보다 미래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의 발전상을 보고 군사력보다 주민들의 삶 개선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습니다. 하노이에서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하노이 수도권에 있는 한인 업체에서 운영-통역 팀장으로 일하는 베트남인 반 씨의 가족은 미국과 한국에 대해 아픈 과거사가 있습니다.
[녹취: 반 씨] “부모님은 예전에 미국과 싸웠을 때 전쟁에 참전했어요. 많이 힘들고. 아버지는 무릎에 상처를 입으셨어요.”
베트남 공산군으로 참전해 미군·한국군과 싸웠던 부모는 고엽제 피해 때문에 전쟁 후에도 후유증을 겪어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컸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쟁 후에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반 씨는 말합니다.
이 때문에 하노이국립대학의 한국어과를 지원할 때도 부모는 그의 결단을 지지했고, 지금은 자신뿐 아니라 베트남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과거의 증오보다 현재와 미래의 번영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녹취: 반 씨] “베트남은 발전하려면 미국과 또 다른 나라와 협력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차량공유업체인 ‘그랩’ 택시를 운전하며 한 달에 1천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40대 초반의 응우옌 떤 런 씨도 베트남전쟁은 오래 전의 일로 잊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런 씨] “No problem! it was long long time ago and we forgot it. The best thing is looking for future…”
최선은 미래를 보는 것이지 과거에 빠져있으면 개인도 국가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노이 시민들의 이런 생각은 1986년 국가의 경제가 바닥을 친 절박한 상황에서 이념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베트남 지도부의 도이머이, 즉 쇄신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대해 수뇌부가 치열하게 논쟁과 공방을 벌이고 당이 실수와 능력 부족을 인민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뒤 천명했던 도이머이는 베트남의 옛 빈곤과 오늘의 번영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레 호아 쭝 베트남 외교부 차관은 최근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런 베트남의 개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쭝 차관] “Vietnam would like to become an active and responsible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t has made encouraging…”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 원하는 베트남의 자세가 개혁 과정의 성취를 북돋웠고 지금도 베트남은 현대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란 겁니다.
하노이에서 1955년부터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옷 가게를 운영하는 응우옌 아인 툭 씨는 도어머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도이머이 전에는 정부가 지시한 유니폼만을 만들었지만, 이후 장사를 자유롭게 하면서 제품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고 고객도 많아져 수입이 크게 늘고 삶은 안정됐기 때문에 당연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하노이 시민들은 26일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시내에 도착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발전하는 베트남의 모습을 잘 살펴 북한에도 적용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툭 씨의 딸인 30대 후반의 위엔티 앙 링 씨는 유창한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이를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링 씨] “What’s happening in Vietnam now and if you give up nuclear weapons, you might can be similar like us…”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한도 베트남처럼 될 수 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베트남보다 더 발전하는 한국 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겁니다.
툭 씨 모녀의 가게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산 18살의 웬밍 하이 씨는 북한이 군사력은 강하지만, 주민들의 삶은 가난하다는 것을 인터넷 등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이 씨는 그러나 정부 지도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하노이 방문을 통해 미국과 평화롭게 지내는 베트남을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하노이 시민들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됩니다.
하노이에서 VOA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