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나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 씨의 부모가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를 담은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북한이 뇌사 상태에 빠진 아들에게 마지막까지 지배력을 과시하는 모습에 굴욕감을 느꼈다고 증언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는 10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제출한 19페이지 분량의 서면 진술서에서 아들 오토가 북한에 억류된 이후 가족들이 견뎌야 했던 상황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북한 당국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습니다.
진술서에 따르면 웜비어 씨가 아들이 ‘혼수상태’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가 귀환하기 열흘 전쯤입니다. 아들 오토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2016년 4월부터 집으로 돌아온 이듬해 6월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들 상태를 몰랐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2016년 12월 미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아들이 건강하다고 말했고, 수 개월 동안 국무부 등을 통해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웜비어 씨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진 뒤에도 이를 모른 채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며, 이런 사실을 돌이켜 보면 역겨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오토의 귀환길에 동행했던 조셉 윤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설명을 토대로, 당시 북한이 혼수상태에 빠진 웜비어 주변에 경비인력까지 배치해 그를 ‘보안상 위협 인물’로 취급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또 북한이 석방 전 ‘사면’에 대한 공식 절차를 진행했는데, 이는 아버지로서 엄청난 굴욕감을 느낄만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젊은이일 뿐이었던 아들이 마지막까지 지배력과 권력을 행사해야만 했던 야만인들의 취급 대상이었다는 겁니다.
웜비어 씨는 아들이 처음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북한 당국의 ‘인질’로 잡혀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무부를 비롯한 미 정부 관계자들도 북한 당국이 아들을 억류하고 있는 건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게 있기 때문이고, 이를 얻기 전까진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부연했습니다.
아울러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과의 면담에서도 아들은 북한의 인질이며, 북한이 그의 석방을 조건으로 무언가를 교환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아들이 억류된 이후 북한과 협상 경험이 있는 국무부 당국자로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발언은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아들의 구금이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무부 관계자는 24일 VOA에 “미국은 다시 한 번 웜비어 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웜비어 가족을 존중해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국무부 관계자] “We, again, extend our condolences to the Warmbier family.Out of respect for the Warmbier family, we have no further comment.”
웜비어 씨는 아들이 억류 당시 카메라 앞에서 ‘자백’을 강요 받았던 상황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치의 보여 주기식 재판’과 같았으며 ‘기이하고 완전한 허구’였다는 지적입니다.
무엇보다 이후 아들의 증언이 담긴 서면 기록을 검토한 결과 사실이 아닌 내용이 많았다며, 관련 내용을 일일이 명시하며 이를 부인했습니다.
예를 들어 법정에선 오토가 2015년 9월23일 신시네티의 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북한의 선전물을 훔치기로 모의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 그 날 아들은 버지니아 샬럿츠빌의 학교에 있었다는 겁니다.
웜비어 씨는 아들의 북한 여행을 주선한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에도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아들이 북한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걱정이 앞섰지만 이 여행 업체는 웹사이트를 통해 북한 여행이 안전하다고 선전했다는 겁니다.
또 이 업체 관계자가 오토의 억류 직후 ‘곧 집으로 돌아온다’고 말했으며, 이후 며칠 뒤에도 ‘모든 게 괜찮다’면서 다음 항공편으로 귀환한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귀환했어야 하는 날로부터 3~4일 지난 시점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여행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국무부 관계자로부터 북한은 주권국가로,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웜비어 씨는 아들의 사망 정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미국으로 되돌아온 지 며칠 후 담당의사로부터 뇌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가족들이 치료 중단을 결정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아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길 원치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웜비어는 돌아온 지 약 6일 뒤인 2017년 6월19일 사망했습니다.
웜비어의 어머니인 신디 웜비어 씨도 같은 날 법원에 서면 진술서를 제출했습니다.
억류 당시 상황을 중심으로 진술서를 써 내려간 남편과 달리 신디 웜비어 씨는 아들이 생전에 건넨 편지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첨부하는 등 주로 아들과의 추억을 담았습니다.
특히 평범한 일상이 아들의 죽음 이후 어려운 일이 됐다며, 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피하려고 최근까지 식료품점에 가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앞서 웜비어의 부모는 지난 4월 아들이 북한의 고문으로 사망했다며 북한 정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장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피고 대리인으로 명시됐습니다.
이후 지난 10일 웜비어의 부모와 주치의, 북한 관련 전문가들의 진술서가 법원에 제출된 상태입니다.
현재 북한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어떤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재판 관련 기록에 따르면 웜비어 씨 부부의 소장은 지난 6월19일 국제우편서비스인 ‘DHL’을 통해 평양 소재 북한 외무성으로 배달됐으며, ‘김’이라는 인물이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웜비어 씨 부부의 법적 대리인은 오토 웜비어의 사망 당시 나이와 학력 등을 고려해 그가 생존했을 경우의 자산 가치를 199만 달러, 420만 달러, 603만 달러 등 3가지 금액으로 추산해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