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조직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불법 유류 제공과 선박간 환적 등 위반 행위를 하고도 이를 덮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러시아는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서 미국과 공방을 벌였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헤일리 대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강력하고 범세계적으로 가해진 대북제재를 완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The Trump-Kim summit has set us on the path toward complete denuclearization. But we are not there yet. And until we get there, we must not ease the powerful worldwide sanctions that are in place.”
헤일리 대사는 17일 비확산과 대북제재를 주제로 한 안보리 회의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지만, 아직 그곳에 도달하진 않았다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겨냥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Despite this, and despite not having yet come close to the achievement of denuclearization, Russia is now asking to ease the sanctions.”
(북한의) 비핵화 달성이 가까워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헤일리 대사는 ‘11번이나 대북제재에 찬성했던 러시아가 이제 와서 되돌아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 뒤 “러시아가 속여왔고, 이제 적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제재 위반 행위는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미국은 거듭되고 광범위한 러시아의 위반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Today, North Korea continues to illegally procure refined petroleum products with the help of Russia.”
헤일리 대사는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불법적으로 석유 제품을 조달하고 있다며,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선박간 환적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선박 ‘패트리어트’ 호가 지난 4월 공해상에서 정제유를 북한이 운영하는 유엔 제재 대상 선박에 넘겨주는 장면이 촬영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더 많은 선박들이 선박간 환적 방식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 또한 갖고 있다며, 올해에만 148건의 관련 사례를 추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헤일리 대사는 “이를 통해 북한은 80만 배럴의 정제유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는 2018년 허용된 상한선 50만 배럴의 160%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연 상한선의 4배에 도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We presented evidence of these violations to the 1718 Committee that tracks sanctions implementation. But Russia prevented the Committee from declaring that North Korea exceeded its oil quota.”
그러면서 미국은 대북제재위원회에 이와 관련한 제재 위반 증거를 제출했지만, 러시아는 위원회가 북한의 정제유 상한선 초과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 걸 막았다고 밝혔습니다.
헤일리 대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신경화학무기인 VX에 의해 살해됐을 당시에도 미국은 유엔의 생화학무기 기술이 북한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 했고, 러시아도 동의했지만 이후 12년된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데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돈벌이를 하고 있는 북한 국적자를 제재하기로 동의했음에도 아직까지 추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북한 국적자가 모스크바 내 은행 계좌를 유지하는 것을 러시아가 돕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헤일리 대사는 또 최근 러시아가 전문가패널을 압박해 중간보고서 내용을 수정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Apparently, Russia threatened to prevent release of the report unless its demand to hide the evidence of its violations was met. To our deep regret, the Panel agreed.
러시아는 자신들의 위반 행위에 대한 증거를 감춰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보고서 공개를 막겠다고 위협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패널은 여기에 동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는 전문가패널의 새 중간보고서 공개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여 왔습니다.
러시아는 보고서의 내용을 문제 삼으며 공개를 막았다가 내용 수정이 이뤄진 후 이를 해제했는데, 미국은 수정 전 원본대로 공개돼야 한다며 또 다시 보고서 공개를 차단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의 간섭이 심각한 상황에서 미국은 “더럽혀진” 보고서에 대한 공개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가 추진 중인 북한과의 철도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Russia originally requested this meeting for the purpose of criticizing the United States for blocking rail projects it wants to pursue with North Korea. Russia planned on asking the Security Council to begin to remove sanctions on North Korea so it could pursue a project for its own economic benefit.”
당초 러시아는 북한과 추진하던 철도 프로젝트를 미국이 막은 것을 비난하기 위해 회의 소집을 요구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자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안보리에 대북제재 해제를 요청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헤일리 대사는 이 같은 러시아의 요구에 대해 “러시아의 극동지방은 석탄을 포함해 일부 경제적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라진에 많은 돈을 들여 항구를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안보리는 2016년 이후 5번이나 라진 항구를 통한 석탄 수출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But that’s not enough for Russia. It wants sanctions relief so it can connect its Trans-Siberian railway into North Korea to ultimately reach a global port in South Korea.”
그러나 러시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채 제재 완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북한에 연결해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제 항구에 닿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에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 관계없이 현 시점은 대북 압박을 줄일 때가 아니”라며 “우리 모두가 동의한 대로 그 시점은 비핵화 이전이 아닌 비핵화와 함께 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사는 헤일리 대사의 이 같은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특히 최근 미-북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을 미국에게 돌리면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녹취: 네벤쟈 대사]
네벤쟈 대사는 현재 미-북 대화가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국제사회가 목격하고 있다며, 21세기 외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요구에 대한 대가로 무엇이든 제공하지 않으면 합의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실체가 없는 약속 아래 아무런 조건 없이 약속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북한이 받는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비핵화 과정은 신뢰를 쌓는 조치와 함께 시작돼야 한다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해 종전에 이르는 것을 그런 조치의 한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은 이 목표에 매우 근접한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가 전문가패널에 압력을 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문가패널은 객관성과 공명성의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중간) 보고서의 초안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네벤쟈 대사]
그러면서 ‘패트리어트’ 호는 전문가패널이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이 내용은 초안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러시아 회사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됐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부록에서 자세한 내용이 지워진 것 외에 아무 변화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러시아 내 북한 국적자가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에 추가 증거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네벤쟈 대사는 한반도에 주둔 중인 유엔군사령부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미국의 통제 아래 운용되는 '유엔사'가 최근 남북간 철도 복원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막았는데, 남북 철도 연결은 판문점선언이 명시한 주요 합의 사항 중 하나라는 겁니다.
이후 헤일리 대사는 추가 발언에서 러시아가 “부인하고, 혼란스럽게 만들며, 거짓말을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녹취: 헤일리 대사] “Deny, distract, and lie. We have heard this same song many times before. Whether it was aiding the Assad regime with chemical weapons. Whether it was the attempted murder of the Skripals with the dangerous nerve agent in the United Kingdom. Whether it was election meddling in the United States - which didn’t work, by the way...”
그러면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나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 스파이에 대한 살해 시도를 했을 때, 또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미국 선거에 개입하려 했을 때에도 (러시아로부터) 같은 식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헤일리 대사는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불량하게 행동하는 건 러시아의 새로운 문화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전문가패널 보고서의 원본 공개를 허용하라고 몰아 부쳤습니다.
이 같은 헤일리 대사의 발언에 네벤쟈 대사는 수정된 보고서는 러시아의 우려를 잘 반영했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전문가들이 동의한 것이라며 헤일리 대사가 “정치적으로 나쁜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국 측이 보고서 공개 거부를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