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올해도 북한 정권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과 대화를 제의하며 북한에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를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참가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합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가 마무리 단계라며 핵 보유 의지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핵탄두 폭발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였으며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하여 위력한 군사적 담보가 마련되었습니다."
북한 정권은 이후 예고대로 한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 ICBM 발사 등 2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수 년 치 북한 주민의 식량에 달하는 비용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허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비핵화의 길로 나올 것을 북한에 촉구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주요 기념일과 당 행사 등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이에 대응한 연합군사훈련을 통해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북한 정권은 이를 “핵전쟁 북침 연습”이라고 주장하며 긴장을 더 높였습니다.
한국에 문재인 정부가 새로 출범했지만, 평양의 대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7일 독일에서 북 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오직 북한이 선택할 일입니다. (사이) 평화를 제도화 해야 합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어 7월 17일 남북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 회담을 제의하며 손을 계속 내밀었지만, 북한 정부는 전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0여일 뒤인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두 번째 발사해 대화 제의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한국군의 방어적 성격인 서해 해상 사격훈련을 비난하며 “서울 불바다” 협박까지 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백령도나 연평도는 물론 서울까지도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다음 달인 9월 6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10월 ‘노동신문’을 통해 “제재·압박과 대화는 양립될 수 없다”며, 이는 곧 “대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이런 강압적 태도와 유엔 안보리의 계속되는 대북 제재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표류를 거듭했습니다.
게다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물꼬를 트려던 계획도 거듭되는 핵·미사일 시험으로 나라 안팎의 여론이 모두 악화되면서 잠잠한 상황입니다.
결국 북한은 지난달 29일 다시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며 핵 무력 완성을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현 시점에서 대화를 제의하기도 힘들 정도로 상당히 위축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정원 대북실장을 지낸 김정봉 한국융합안보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입니다.
[녹취:김정봉 센터장]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도발만 중지하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려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죠. 그런데 주요 계기 때마다 북한이 도발하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했고, 북한은 일단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확실한 핵 무장력을 갖추게 되면 그 다음부터 대화 국면으로 돌아서려고 하는데, 일단 중심 고리가 북한과 미국 관계이고 종속변수가 남북관계다 보니 북한 입장에서 대미관계를 돌파하려고 핵 무장력 강화하고 대미관계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북관계를 거의 무시했고 한국 정부는 북한이 계속 도발하는 바람에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때문에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통해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평창행 KTX 고속열차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바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북한이 참여하더라도 참여를 확약하는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계획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26일 배포한 ‘2017 북한정세 평가 및 2018 전망’ 자료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지속 추구하되 대외 출로를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통일부 당국자는 내년에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으로 나름대로 성과가 필요한 해라며 외교적 경제적 압박 속에서 대외·대남 출로가 필요한 상황이라 기대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이 평창올림픽을 출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김병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반전을 시도하겠지만,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병로 교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반전을 시도할 것 같은데 글쎄요. 북한이 어느 정도 호응을 해 와야 하는데 그렇게 썩 제대로 호응할 것 같지 않구요. 미국도 물러설 것 같지 않아서 내년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이 물론 표면적으로 화해와 대화 쪽으로 제안을 하긴 할 거예요. 그런데 미국이 그렇게 받아줄 가능성이 적고 그래서 내년도 올해와 비슷하게 굉장히 위기 국면으로 치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봉 센터장은 북한이 평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거의 없어 정권의 위상 높이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참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정봉 센터장] “위대한 수령의 위상을 드높이는 게 그 게 국가의 목적인데 와서 망신만 당하면 어떻게 오겠습니까? 평창올림픽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패럴림픽은 만약 금메달이나 메달을 딸 전망이 보이면 참가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식 올림픽에는 참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김 센터장은 그러나 “미국의 대북 공격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북한이 정치적으로 올림픽을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척하면서 한-미 동맹을 이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의 참가 명분으로 운동선수가 아니라 장웅 IOC 위원이나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파견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해 평창올림픽에 앞서 남북 접촉을 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최근 펴낸 ‘2017-2018 한반도 리포트’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여부가 향후 남북관계의 가늠자가 될 수 있지만, 부정과 긍정 요인들이 혼재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참가와 평화적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연결된다면 남북관계에 독자적 공간 확보가 가능하겠지만, 불참과 추가 도발로 올림픽이 영향을 받으면 남북관계 국면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연구소는 그러면서 북한이 핵 문제와 대미 관계에 올인하고 있는 국면에서 올림픽 참가보다는 남북관계의 의도적 긴장 국면 조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연구소의 임을출 북한개발국제협력센터장은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특성상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며 북한의 올림픽 참가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불투명하다고 봐야 하지 단정적으로 북한이 참가를 안 할 거다, 이렇게 봐서는 안 되죠.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 하지만 사실 동계올림픽 자체로만 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이 게 남북관계, 대미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물론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든 측면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김정은이 그동안 체육 부처를 장려하고 발전시켜 온 과정들을 보면 김정은 스타일은 어쨌든 성적 자체보다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하기 위한, 자신들이 선택이 어떤 게 가장 좋으냐는 그런 측면에서 보는 게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지 닷새 만에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볼 때, 섣부른 전망은 삼가야 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