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탈북하는 주민과 군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유린 문제라고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밝혔습니다. 이들은 최근 북한군 병사가 망명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옛 독일 사례를 적용해 방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지난 2003년 12월 독일 베를린의 한 교도소. 백발의 노인이 석방돼 교도소 문을 나서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듭니다.
[녹취: 취재진 셔터 소리와 독일어]
이 노인은 옛 동독 정권의 마지막 통치자였던 에곤 크렌츠 전 공산당 서기장.
1997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주하던 동독인들에 대해 사살 명령을 내린 혐의로 징역 6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날 조기 석방된 겁니다.
[녹취: 크렌츠 전 서기장] “독일어
크렌츠 전 서기장은 당시 취재진에게 피해 동독인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자신은 냉전시대의 상황에 따라 국정을 수행한 것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통일 독일 정부는 옛 동독의 범죄들을 자세히 기록하면서도 처벌에는 비교적 관대했지만, 동독인 탈주자들에 대한 사살 행위는 철저하게 조사해 처벌했습니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독재청산재단에 따르면, 동독 국경지대에서 지뢰와 총기 발포로 숨진 동독인은 584명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369명이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하다 총격을 받은 북한 군인처럼 정조준 사격으로 사살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통일 뒤 동독 국경경비대원과 책임자 240여명을 기소했고, 법원은 이 가운데 132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2년 전 발행한 ‘독일통일 총서-과거청산’ 편에서 비무장한 동독인들의 월경 시도에 대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은 비인간적 행위로 인권 경시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 사법청산 과정에서 독일 사회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직접 총격을 가한 동독 국경수비대원뿐 아니라 이들에게 명령과 규정을 하달한 상위 책임자들까지 기소해 처벌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크렌츠 전 서기장이었습니다.
북한 내 인권 범죄를 기록하고 이를 지도로 만드는 활동을 하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이영환 대표는 17일 ‘VOA’에, 총상을 입은 북한 군인의 망명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방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독일도 그렇고 구 유고에서도 그랬습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사람들에게 조준사격을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은 탈출하는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따라 집행한 말단의 군인들을 문책하는 경우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위의 상급자가 누구냐. 누가 봐도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민주인권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히 조사와 책임자 처벌, 진상 규명이 분명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특히 “북한 내부 특성상 총격을 가한 북한 군인들을 포상하고 미화해 앞으로도 무조건 사살하라는 지시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문제가 심각한 인권 사안이자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북한 책임자들이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이게 왜 나중에 심각한 당신들의 책임 처벌 문제인지를 해 주는 (대북) 방송을 꼭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나중에 우리 정부 쪽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중에 이런 일이 재발이 됐을 때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게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금의 이런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와 증거, 논리적 바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정부가 침묵하는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짓이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정부의 국비 장학생 출신으로 한국에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탈북민 오세혁 씨는 북한 군인의 총상은 생명을 경시하는 북한 내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며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분명히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세혁 씨] “(북한에서는) 도주자, 배반자니까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국제 인권 기준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그 생명이 통치자에 의해서 그렇게 아무렇게나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국경을 벗어나는 탈북자들이 국경경비대한테 총으로 맞아 두만강, 압록강에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근데 그런 걸 당연히 여기는 게 북한 법이고, 북한 통치자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왔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제사회에서 JSA에서 넘어오는 군인에 대해 총으로 사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통일부 산하기구인 북한인권기록센터 관계자는 17일 ‘VOA’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상을 당한 채 망명한 북한 군인 사례 역시 “기본적인 틀 안에서 인권 침해 조사 대상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 북한 군인이 회복된 뒤 자세히 조사해야 보다 분명한 기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세혁 씨는 한국에 살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할 때 국가도 발전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처벌에 앞서 북한도 군인의 망명을 계기로 발상의 전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세혁 씨] “생각이 다른 것만으로 막 처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다 잘못하는 게 있잖아요. 김일성도 잘못한 게 많은데 그걸 비판받아야지 비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 지경이 된 거잖아요. 근데 북한에서는 아 저 사람이 정권과 다른 생각을 가졌으니 죽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세뇌를 받았는데, 한국에 오니까 그런 게 존중 받아야 하는 거죠. 그런 서로 다른 생각이 있으므로 해서 좀 더 사회가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