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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1994년 한반도 전쟁 위기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자료사진)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자료사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 함이 한반도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지난 1994년에도 북 핵 문제를 놓고 전쟁 위기가 고조된 적이 있었습니다. 23년 전 한반도를 강타했던 위기 상황을 김정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녹취: 박영수 북한 대표]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1994년 3월 19일,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 나온 박영수 북한 대표의 이 발언으로 한국과 미국이 발칵 뒤집어집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일부 한국 국민은 전쟁 발발을 우려해 먹을거리를 사재기하는 등 전쟁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습니다.

당시 북한 대표의 이른바 '불바다 발언'은 북 핵 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이 한껏 높아가던 때 나왔습니다.

북한은 그 전 해인 1993년 영변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이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과 극도로 대립하는 상황이 다음 해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1993년 여름 미국과 북한은 양자회담을 통해 긴장 완화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다음해 북한의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후속 협상이 중단됩니다.

이에 북한은 5월 3일, 영변 원자로에 연료를 재장전하겠다고 위협했고, 5월 16일 이를 실행하는 조치로 핵연료봉을 교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유엔 안보리가 6월 대북 제재 논의에 착수하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 탈퇴를 선언하고, ‘유엔 제재는 곧 선전포고’라고 주장하면서 위기가 격화됩니다.

[녹취: 1994년 한국 방송 뉴스] "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군사전문가들은 이 악몽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삼았던 핵연료봉 교체가 시작되자 북 핵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5월 18일 전직 고위 장성들을 국방부로 불러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논의한 데 이어, 6월 14일 장관급 회의에서 영변에 대한 폭격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6월16일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미국 시민들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당시 미국 정부가 증원 전력을 한반도 주변에 대기시켰고, 추가 전력이 미 본토에서 한국에 도착하면 북한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처럼 급박했던 상황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극적인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1994년 6월 15일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난 것입니다.

[녹취: 카터 전 미국 대통령] "I personally believe..."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 미국의 대북 경수로 지원, 핵 공격 위협 제거,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의 핵 개발 동결과 남북정상회담 추진, 미-북 고위급회담 재개 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같은해 8월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고, 마침내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합의에 서명하면서 제1차 북 핵 위기로 인한 전쟁 위기는 해소됐습니다.

VOA 뉴스 김정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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