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함으로써 사회주의 형제국가로 여겼던 북한과 쿠바, 두 나라의 관계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혈맹관계가 한층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들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8일 북한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 인민이 크나큰 슬픔에 잠겨 있다며 카스트로 전 의장이 남긴 업적은 두 나라 인민들의 심장 속에서 길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주재 외국 대사관을 직접 찾은 사실이 북한 매체를 통해 외부사회에 공개된 것은 집권 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한은 카스트로 전 의장의 사망에 대해 28일부터 사흘간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조기를 게양하는 한편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조문단을 쿠바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대사관에서 카스트로 전 의장을 애도하는 사진을 29일자 신문 1면에 게재하고 6면엔 별도로 쿠바 공산혁명을 이끈 카스트로 전 의장의 일대기를 실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국가적 예우를 갖춰 카스트로 전 의장을 추모하는 이유는 국제사회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혈맹국가 가운데 하나인 쿠바와의 유대를 과시해보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북한으로선 국제사회제재와 고립 속에서 쿠바와의 동맹관계 유지에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김정은 정권 들어서 세계 자주화를 표방하고 비동맹 국가들과의 연대 이런 것들을 표방하는 상황에서 비동맹의 지도적 국가였던 쿠바와의 관계는 정치적이든 외교적인 다방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쿠바의 최고 지도자였던 카스트로 사망은 북한으로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서 조의를 표명할 수 밖에 없는 수요를 갖고 있었던 사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북한과 쿠바는 서로를 사회주의 형제국가로 여기며 정치적 군사적 교류를 계속해 왔고 국제무대에서도 서로의 입장을 지지해왔습니다. 쿠바도 지난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사흘간의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지난 1960년 수교 이래 지금까지 양국 관계가 이처럼 끈끈하게 이어져 온 것은 ‘혁명 1세대’인 김일성 주석과 카스트로 전 의장의 돈독한 관계가 바탕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1986년 김 주석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양국간 친선협조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또 2013년 자신의 저서에서 방북 당시 김 주석으로부터 소총 10만 정과 탄약을 무상으로 받은 일을 회고하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혁명 1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써 양국의 전통적인 유대 관계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전현준 박사는 쿠바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사회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우방 관계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전현준 박사 /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쿠바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서방 문물을 받아들이는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마냥 김정은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갈수록 사회주의적인 특수관계라기 보다는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점점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의 집권 이후 쿠바가 실용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에 이미 북한과의 실질 협력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북한과 쿠바가 비동맹 국가로서의 기존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그렇다고 서방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쿠바로선 북한과의 혈맹관계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