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 ‘조선속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마식령속도’에 이어 경제강국 건설을 독려하기 위한 대중동원 구호로 보이는데, 김정은 시대의 대표적인 속도전 구호로 자리매김 할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근로자들이여, 당의 영도 따라 조선속도를 창조하며 폭풍쳐나가자.’
노동절인 지난 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게재된 사설의 제목입니다.
북한이 5.1절, 노동절을 맞아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체제 수호전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선속도를 창조해야 한다고 선전한 겁니다.
노동신문은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새로운 주체 100년을 대표할 수 있는 조선속도로 창조해 나갈 것을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비상한 각오로 조선속도를 창조해 나아가야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고 노동신문은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한군이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수개월 만에 ‘1월8일 수산사업소’를 건설한 것을 조선속도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1월8일 수산사업소는 취약계층에게 수산물을 공급하는 시설로 김 제1위원장이 지난 1월 초 건설을 지시한 이후 단기간에 완성돼 지난달 30일 조업을 시작했습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이곳을 방문해 수산사업소가 빨리 세워진 것이야말로 조선속도라며 치하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의 양적, 질적 성과를 내자는 선전구호인 겁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는 ‘조선속도’는 김정은 시대에 노동력의 총동원화를 요구하는 생산력 발전의 집약된 구호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이 이제 군부와 당을 어느 정도 정비하고 다 누워버린 노동자를 일으켜 세워서 생산투쟁의 축을 총궐기하자는 뜻으로 조선속도라는 아주 광의적인 속도전의 개념을 들고 나왔고 조선속도는 결국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속도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김일성 시대에는 ‘천리마 속도’, 김정일 시대에는 ‘희천 속도’가 각각 등장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6월 마식령 스키장 건설 당시 ‘마식령 속도’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후 생산자와 관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
‘근로자들이여, 당의 영도 따라 조선속도를 창조하며 폭풍쳐나가자.’
노동절인 지난 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게재된 사설의 제목입니다.
북한이 5.1절, 노동절을 맞아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체제 수호전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선속도를 창조해야 한다고 선전한 겁니다.
노동신문은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새로운 주체 100년을 대표할 수 있는 조선속도로 창조해 나갈 것을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비상한 각오로 조선속도를 창조해 나아가야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고 노동신문은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한군이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수개월 만에 ‘1월8일 수산사업소’를 건설한 것을 조선속도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1월8일 수산사업소는 취약계층에게 수산물을 공급하는 시설로 김 제1위원장이 지난 1월 초 건설을 지시한 이후 단기간에 완성돼 지난달 30일 조업을 시작했습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이곳을 방문해 수산사업소가 빨리 세워진 것이야말로 조선속도라며 치하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의 양적, 질적 성과를 내자는 선전구호인 겁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는 ‘조선속도’는 김정은 시대에 노동력의 총동원화를 요구하는 생산력 발전의 집약된 구호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이 이제 군부와 당을 어느 정도 정비하고 다 누워버린 노동자를 일으켜 세워서 생산투쟁의 축을 총궐기하자는 뜻으로 조선속도라는 아주 광의적인 속도전의 개념을 들고 나왔고 조선속도는 결국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속도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김일성 시대에는 ‘천리마 속도’, 김정일 시대에는 ‘희천 속도’가 각각 등장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6월 마식령 스키장 건설 당시 ‘마식령 속도’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후 생산자와 관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