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서울 올림픽 불참 요청에 대한 중국측 반응과 한국의 외교 활동 확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문서를 살펴봅니다.
서울 올림픽 유치 확정. 당시 서울은 경쟁 상대였던 일본 나고야에 비해 홍보도 미약했고, 국제 경기를 치른 경험도 부족해서 열세에 있었지만, 전방위적인 스포츠 외교를 펼친 끝에 올림픽 유치에 성공합니다.
1988년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이 열리자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해 다음 해인 1989년 7월 1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편의를 제공하면서까지 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치를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당시 기술 수준이 상당히 앞서 있었던 동독에 지원을 요청하는데요, 먼저 동독에서 물품을 보내준다는 편지에 대해 당시 북한 국가보위부가 동독의 슈타지로 고마움을 전한 편지 문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