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이 담긴 문서를 소개해드렸는데요. 북한은 사건 발생 나흘 후인 8월 19일 사회주의 국가의 외교관들을 모아놓고 이 사건은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범인 문세광이 김대중을 구출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정황들이 알려지자 북한은 다시 한 번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요, 북한이 밝힌 입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외교 문서를 소개합니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23분 광복절 제29주년 기념식이 거행되던 서울 국립극장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연단에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겨눈 범인의 총구는 단상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의 머리를 관통했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범인 문세광이 검거됩니다. 그런데 북한은 외교문서에서, 이 사건을 김대중 구출 운동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한 비밀 외교문서 속 북한의 입장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22일은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사망한 지 63주년이 되는 김 정숙의 사망 기념일이었습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북한 언론에서는 김정숙 찬양 기사를 싣고요. 당과 군 간부들을 비롯해 일반 주민들은 김정숙의 동상을 찾아 화환과 꽃다발을 전달한다고 하는데요. 비밀 외교 문서 속 북한, 오늘은 김정숙의 우상화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문서를 소개합니다.
지난 7월 초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를 전격 공개하면서 리설주의 출신 배경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죠.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세습 구도 속에 지도자들만큼이나 그 부인들도 많은 부분 베일에 쌓여 있어서 더욱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나 싶습니다. 비밀 외교 문서 속 북한, 오늘부터 2주에 걸쳐 김일성 주석의 부인들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를 소개합니다.
1983년 2월 1일 한국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83’ 이 시작됩니다. 팀 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북한측의 입장을 보여주는 문서는 여러 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로 훈련이 실시됐던 1983년의 팀 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헝가리에 대한 요구 사항이 담긴 문서를 소개합니다.
지난 시간에 1985년 헝가리 공산당 기관지인 ‘민족 자유 신문’ 기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 신문에 보도한 한국 관련 기사 내용과 이 기사가 보도된 후 북한이 보인 반응 등을 전해드렸는데요. 당시 한국과 수교도 없었던 헝가리 언론인들이 어떻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을까요?
비록 수교는 없던 시기였지만 1985년 한국과 헝가리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985년 7월 헝가리 언론에는 유례없이 많은 한국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북한의 반발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북한은 김충일 외무성 제1부상이 직접 평양 주재 터러버 야노쉬 헝가리 대사를 찾아가 항의하기에 이릅니다.
한국이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헝가리로부터 채점판을 수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요, 당시 부다페스트 주재 북한 대사가 헝가리 외무성을 찾아와 항의한 내용과 헝가리 당국의 대책이 담겨 있는 문서를 소개합니다.
북한의 서울 올림픽 불참 요청에 대한 중국측 반응과 한국의 외교 활동 확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문서를 살펴봅니다.
서울 올림픽 유치 확정. 당시 서울은 경쟁 상대였던 일본 나고야에 비해 홍보도 미약했고, 국제 경기를 치른 경험도 부족해서 열세에 있었지만, 전방위적인 스포츠 외교를 펼친 끝에 올림픽 유치에 성공합니다.
1988년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이 열리자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해 다음 해인 1989년 7월 1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편의를 제공하면서까지 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치를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당시 기술 수준이 상당히 앞서 있었던 동독에 지원을 요청하는데요, 먼저 동독에서 물품을 보내준다는 편지에 대해 당시 북한 국가보위부가 동독의 슈타지로 고마움을 전한 편지 문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