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영변의 플루토늄 원자로 재가동 징후를 밝히면서 영변 핵단지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변 핵단지는 과거 북한과 미국 등의 핵 협상에서 주요 비핵화 대상 시설로 다뤄졌는데요, 이 시설의 핵 생산 역량에 대해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에 자리한 영변 핵단지는 오랫동안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로 여겨져 왔습니다.
400여 개 이상의 시설이 들어선 이곳은 핵연료 생산에서 재처리를 통한 무기급 핵물질 생산까지 가능한 완결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핵심 시설은 5MW(메가와트)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그리고 2010년 가동 사실이 공개된 우라늄 농축 시설 등입니다.
5MW 원자로를 가동해 생산한 폐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연간 6~7kg의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6월 정기이사회 보고 때만 해도 방사화학연구소의 활동 정황을 제기하면서도 5 MW 원자로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전인 2018년 12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그로시 사무총장/6월] “There are no indications of operation at the 5MW(e) nuclear reactor or of the production of enriched uranium at the reported centrifuge enrichment facility at Yongbyon.”
하지만 최근 9월에 열리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 7월부터 5 MW 원자로가 가동된 정황을 제기한 것입니다.
영변 5 MW 원자로 가동은 사실상 북한 핵 활동 재개의 신호탄으로 간주됩니다.
방사화학연구소에서의 재처리는 기존 폐연료봉으로도 가능하지만 원자로 재가동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의 추가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변 핵단지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중심에 선 것은 1993년부터입니다. 특히 5MW 원자로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합의에 따라 가동과 중단과 반복해왔습니다.
1993년 3월 북한이 IAEA의 특별사찰에 반발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1차 북핵위기’가 불거졌고, 이듬해 미국과 북한은 핵 동결과 경제 지원·관계 정상화 추진을 골자로 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도출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처음으로 영변 5MW 원자로를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2002년 10월에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함으로써 2차 북핵위기가 발발했고, 이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중유 지원을 중단하자 북한은 ‘핵 동결 해제 선언’과 함께 원자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이후 북 핵 6자 회담이 가동됐고 2005년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 등 6개 항이 담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북한은 ‘영변 원자로 폐쇄와 불능화’에 합의하고 이듬해 6월 6자회담 참가국과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녹취: 2008년 6월 27일 폭파 현장]
그러나 검증 문제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를 놓고 참가국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북한은 2009년 IAEA 사찰단을 영변 핵시설에서 추방하고 핵 개발을 강행합니다.
미국과 북한이 마지막으로 영변 핵 활동 중지에 합의한 것은 2012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체결한 ‘2.29’ 합의였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의 임시 중단 등을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합의였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단지 카드를 다시 꺼냈습니다.
[녹취: 리용호 북한 외무상]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내 영변 외에 다른 시설들이 있다며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하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녹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He was willing to Yongbyon, but you wanted more than that?) We had to have more than that, yeah. We had to have more than that because there are other things…”
북한 핵 역량에서 영변 핵단지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립니다.
지난달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 러시아 에너지·안보연구센터(CENESS)는 보고서를 통해 영변 핵시설이 폐기됐다면 북한의 무기생산 역량이 80%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1986년부터 최근까지 영변 핵시설에서 약 42~55kg의 플루토늄을 생산했고, 고농축 우라늄의 경우 연간 60~80kg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지난 7월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가 어느 정도로 북한의 역량을 줄였을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VOA에, 영변이 북한 내 핵무기 생산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는 핵물질 생산에 국한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녹취: 하이노넨 특별연구원] “Yongbyon plays a key role on that. So I agree with that. This is only for the production of fissile material, but once you have fissile material, whether it's uranium or plutonium, you still don't have a weapon. The actual weapon manufacturing happens elsewhere. Not in Yongbyon.”
하이노넨 연구원은 영변 핵시설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 핵물질을 생산하는 곳으로 실제 무기 제조는 다른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고 해도 북한은 핵 역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도 과거 VOA에, 영변 핵 시설이 전체 북핵 프로그램의 70%~80%에 해당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과장된 것”이라며, 각국 정부들의 분석을 종합했을 때 영변의 비중은 최대 50% 수준이며 가장 중요한 시설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과거 북 핵 6자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 문제를 다뤘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과거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