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한국 정부와 유엔에서 북한 핵 문제를 직접 다룬 소회를 밝혔습니다. 북한이 핵 폐기 의사가 없는 것으로 진단하며,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해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첫 회고록 ‘단호한 의지: 분열된 세계에서의 유엔’(Resolved: United Nations in a Divided World)을 발간하고 어린 시절부터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까지 다양한 경험을 공개했습니다.
“북한, 핵 프로그램 절대 폐기 않을 것”
반 전 총장은 회고록에서 ‘어려운 사촌’(Difficult Cousin)이라는 부제로 25년간 외교관으로서 북한을 상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특히 북한이 핵 폐기 의사가 없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회고록] “Personally, I’m no longer sure the centrifuges will be dismantled even with full diplomatic recognition by the United States and a declaration of peace on the peninsula. The regime is not motivated by a desire for peace. My doubts have never wavered.”
“미국이 북한을 외교적으로 완전히 인정해주고, 한반도 평화선언이 체결된다 해도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해체할지 여부에 더 이상 확신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의심은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북한 정권은 핵 프로그램을 절대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인식이 북한과의 관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자신은 “북한과 25년 간 관여하는 동안 북한으로부터 협력이나 심지어 선의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며 “북한을 대할 때 더 현실적이고 기민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과 한국이 (역내)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 단호하고 원칙에 입각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대북 화해에 집중하기 보다는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려는 미국 주도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 전 총장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한미경제연구소와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지난 6월 공동 개최한 화상간담회 내용입니다.
[녹취: 반 전 총장] “N Korea seems to have a list of 40 to 50 nuclear weapons. This is very serious one. Therefore there must be a continuing negotiation between the two parts of Korea.”
반 전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북한은 약 40개에서 5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기에 남북한 간 협상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과거 미국과 한국과 이미 맺은 비핵화 합의들을 지키길 바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대화의 길’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북 핵 교섭 대표부터 한국 외교장관까지
한편 반기문 전 총장은 회고록에서 북한이 자신의 전 생애와 경력에 걸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며, 자신은 북한 정권의 자국민에 대한 잔인한 처우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 핵 문제의 경우 1990년대 초 미 중앙정보국 CIA 요원들이 서울을 방문해 북한 핵 개발에 대한 기밀첩보를 공유할 때부터 자신이 관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또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도출을 위한 5명의 협상대표 중 일원으로 참석했는데, 이 때 북한 대표단이 협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시간끌기 수법들을 동원해 당황했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당시 북한 측 대표로 참가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노골적인 발언과 사나운 수사법이 ‘독사’와 같은 인상을 줬다”고 평가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도출된 뒤 이듬해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강제사찰(challenge inspection)을 도입하려다 북한의 반대로 무산된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이후 제네바합의 때부터는 북한이 한국에 대해 ‘문을 완전히 닫고’ 미국과만 협상을 이어갔다고 회고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이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2005년에 북 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지만, 결국 북한이 이듬해 핵실험에 나섰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방북 세 차례 추진’
반 전 총장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은 지 12시간 후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 사무총장 직책을 활용해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싶었다며, 임기 초부터 북한과 접촉해 방북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2009년 말 북한으로부터 공식 초대장을 가져왔지만 당시 자신의 선결과제였던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일정을 조정하다 무산됐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 5월에는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북한 당국과 합의했지만, 방북 예정일 바로 전날 북한 당국이 아무런 설명 없이 초대를 취소했다고 전했습니다.
그해 11월에 다시 방북 초대를 받았지만 역시 며칠 전에 북한이 취소했다며, 당시 우울하고 불만이 생겼으며, 화가 났고 모든 경력을 통틀어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거듭 자신의 방북을 마지막 순간에 취소한 데 대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자신이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일성에 대한 참배를 거부한 점과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사가 방북을 통해 주목을 끄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만나는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반 전 총장은 회고록에서 북한 문제 외에 아프리카 수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란 핵 협상, 아이티 지진 등 유엔 사무총장으로 전 세계 평화 증진에 나선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한국전쟁 이후 유엔의 식량과 학용품 지원을 받고 자라난 자신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은 가장 큰 명예이자 특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반 전 총장의 회고록은 9월에 한국어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