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원양어선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수 년간 가족들과 연락도 하지 못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은 자국민의 강제 노동을 통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 ‘환경정의재단(EJF)’은 22일 북한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 실태를 담은 ‘바다에 갇힌 사람들: 중국 인도양 참치 어선에서의 북한 강제 노동 폭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2017~2023년 사이 인도양 남서부에서 조업하는 중국 선박 71척에서 177건의 불법 조업과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거나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사는 2019~2024년 인도양에서 중국 참치잡이 어선에서 일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국적 선원 19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북한 선원들, 땅 밟지도 못해”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말리아와 모리셔스 등 인근에서 조업하는 중국 원양어선은 인근 항구에 정기적으로 입항하지만, 북한 선원들은 출입국 관리 당국의 단속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배에 옮겨 타는 방식으로 땅조차 밟지 못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따라 채택한 대북 결의 2397호를 통해 모든 회원국들에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하고, 기존 북한 노동자들도 2019년 12월까지 본국으로 송환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12월 모리셔스 루이스항에 정박한 중국 어선 선장과 북한 국적의 선원 6명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선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배가 항구에 정박해도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인근 다른 배로 옮겨진다고 선원들은 증언했습니다.
이는 선장이나 선주들이 북한 노동자 사용이 금지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또 많은 북한 노동자들은 수 년간, 일부는 10년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보고서] “Furthermore, it appears that the captains of these vessels actively attempted to hide the fact that North Koreans were on board - either by concealing them at ports or transferring them to sister vessels while at sea. This indicates that vessel captains, and likely vessel owners, were aware that the use of this labour was prohibited. The evidence suggests that many of the North Koreans were working on board the fleet of vessels for years - in some instances potentially as long as a decade - without returning to North Korea, and in some instances without returning to land.”
“휴대전화 소지도 금지, 가족과 연락 두절”
북한 선원들은 중국 선박에서 일하는 동안 휴대전화 소지도 금지돼 수 년간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못한다고 동료 선원들은 전했습니다.
한 인도네시아 선원은 인터뷰에서 “북한 선원들은 바다에 있을 때 아내나 다른 사람들과 연락할 수 없었다”면서 “그들은 휴대전화 소지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보고서] “They never communicated with their wives or others while at sea as they were not allowed to bring a mobile phone.”
“북한 강제노동, 세계 최악의 인권 침해”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이날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이 자국민에게 강제 노동과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에 대한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On the other hand, it's unfortunately consistent with what the North Koreans have do with their own population in terms of forced labor and poor remuneration for working and that kind of thing. I think it's just another indication of North Korea's vile human rights record.”
이어 “북한의 강제 노동은 매우 심각하다”면서 “북한은 노동자 학대, 노동자 권리 보장 부족, 노동자 임금 미지급, 강제 노동 등 세계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자국민 강제노동으로 정권 유지”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회장은 이날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정은 정권의 최고 전략적 목표는 생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생존을 위해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생산∙유지하고, 엘리트층을 달래기 위해 외화와 사치품 수입이 필요하다”며 “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자국민을 착취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회장] “The regime's top strategic objective is survival. In order to survive, it needs hard currency to produce its nuclear weapons, to maintain and produce its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s to keep the elites happy through access to hard currency and luxury goods imported from the outside world in violation of applicable UN sanctions. In order to procure that hard currency, the North Korean regime exploits its own people at home and abroad.”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존 시프턴 아시아 담당 국장은 이날 VOA에 북한 정권이 강제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면서,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 침해와 군사∙무기 문제의 깊은 연관성을 재확인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는 국제 평화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며 이런 인권 침해로 발생하는 수익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다”면서 “유엔 안보리와 총회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논의에서 이런 문제들을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10만명 이상 자국민 전 세계에 인신매매”
시프턴 국장은 “북한 정부는 10만 명이 넘는 자국민을 전 세계 수십 개 나라에 인신매매해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대부분의 임금을 정부가 착취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시프턴 국장]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s trafficked over 100,000 of its own citizens to dozens of countries around the world, where they work in forced labor conditions and have most of their wages taken by the government.”
“중국,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북한 노동자 보호해야”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 의장은 이날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보고서는 북한 정권이 자국민을 노예 노동자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면서 “중국이 이런 관행을 막기 위해 마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를 계속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줬으며, 중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숄티 의장] “It's also a confirmation of the fact that China continues to undermine the very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that were supposed to stop this kind of practice and China should be held accountable for this.”
시프턴 국장은 “북한 노동력으로 이익을 얻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정부들은 모든 노동자들이 임금을 전액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인신매매를 당한 경우 망명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사회, 대북 제재 계속 이행해야”
킹 전 특사는 북한의 강제 노동을 근절하려면 북한산 제품의 수입 금지 등 철저한 대북 제재가 계속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해 제재를 회피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이것이 제재 집행에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The Chinese unfortunately are helpful to the North Koreans in avoiding these sanctions. The same thing is true with Russia, which provides help and assistance for the North Koreans. And all of these issues are being creating problems for enforcement of the sanctions.”
스칼라튜 회장은 국제 사회와 각국의 사법기관과 정보기관, 노동 관련 감시 기관들이 선박 강제 노동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강제 노동이 포함된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강제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나라로 이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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