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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부부 터너 북한인권특사, 재미이산가족 대표단 면담


미 국무부의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와 백악관 아시안 정책 담당자 및 인권 담당자가 21일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과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만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의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와 백악관 아시안 정책 담당자 및 인권 담당자가 21일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과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만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재미 이산가족들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산가족들은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서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국무부의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와 백악관 아시안 정책 담당자 및 인권 담당자가 21일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과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만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가 24일 밝혔습니다.

추진위에 따르면, 이날 면담은 오후 2시부터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며, 시카고, 필라델피아, 워싱턴, LA의 이산가족 대표단 15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날 면담에 참석한 이산가족들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며,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서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이 이미 80~90대의 고령으로 가족과 헤어진 평생의 한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이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만주에서 남한으로 떠나면서 아버지, 오빠와 헤어진 이차희 추진위 사무총장은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내 나이 83세로 이미 아버지와 오빠도 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어 개인적 바람보다 함께 마음 아파했던 다른 이산가족들의 한을 미국 정부가 나서서 풀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며 “이산가족들은 이미 고령으로 가족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평생의 한을 못 풀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살아서 고향에 못 가면 죽어서라도 고향땅을 한번 밟아보고 싶다는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사무총장] “그러니까 이 평생에 고향에 살아서 못 가지만 죽어서라도 가겠다, 이런 말씀입니다. 자기가 죽거들랑 재를 고향 땅에 갖고 가서 묻어달라. 두 분이 아직 (부모님의) 재를 갖고 계십니다.”

북한이 고향인 부모님의 유언에 따라 부모님의 유골을 보관하면서 언젠가 고향땅에 모실 수 있는 날을 기다리거나 부모님의 유해라도 찾고 싶어하는 이산가족들이 있지만, 이미 고령으로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터너 특사와의 면담에 참석했던 한인 전선복 씨는 24일 VOA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은 늘 북한에 두고 온 자식의 생사를 평생 궁금해 하며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선복 씨] “그러고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그래도 혹시 피난민 속에 혹시 우리 오빠가 끼어서 오지 않을까, 그 희망을 가지고 부둣가에 나가서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 매일같이 피난민들이 배, 조그마한 배 타고 오고 이제 계속 그 부산하고 거제도에 그 연락선이 다녔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 배에서 매일 피난민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거기 혹시 우리 아들이 없을까 하고 이제 살피면서 저 바다 건너 보면 수평선이 보이잖아요. 그러면 이제 우리 어머니가 이래요. ‘우리도 저 배 타고 다시 저기까지 가면은 흥남이 나오겠지’ 늘 그런 얘기하셨어요.”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 철수작전 당시 ‘기적의 배’라고 불리게 된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열세 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거제도로 피난 온 전선복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인민군으로 끌려간 오빠를 그리워했다”면서 “거제도로 온 이후 포로수용소를 샅샅이 뒤지며 오빠를 찾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추진위는 “터너 특사는 가장 급선무는 재미 이산가족 인원 파악이라는 점에 동의했으며, 재미 이산가족 상봉에 미국 정치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추진위에 따르면, 터너 특사는 앞서 지난 10일에도 시카고를 방문해 시카고 이산가족 대표를 만났습니다.

지난 2017년 1월 로버트 킹 전 특사가 퇴임한 뒤 6년 9개월여 만인 지난달 13일 취임 선서를 하고 공식 활동을 시작한 터너 특사는 앞서 지난 5월 상원 외교위원회가 개최한 인준 청문회에서 특사로서 집중할 5가지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로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 상봉 노력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차희 사무총장은 “21일 면담에서 터너 특사의 정성과 성의를 체감할 수 있었다”며 “미국 정부 관리가 직접 건물 입구까지 마중나오고, 면담 후에 청사 입구까지 같이 걸어나와 작별인사를 해준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사무총장] “터너 대사가 우리한테는 마지막 희망이고, 더 라스트, 그 희망, 호프고 챈스입니다. 예, 그러니까 우리 이산가족들 상봉시켜달라는 그겁니다. 돌아가시면서 한을, 이 재를 유언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한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얼마 살아남지 않으셨는데 이분들의 한을 풀어 드리는 겁니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은 이날 사회연결망서비스인 X에 터너 특사가 대표단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터너 특사가 재미 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대표들과 만나 70여 년 전 헤어진 북한 내 가족들과의 상봉을 긴급히 돕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고 썼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며 이산가족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면서 “미국은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며,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경우 한국계 미국인도 상봉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 “The United States supports efforts to reunite families separated during the Korean War and recognizes the heavy emotional toll these families have borne. The United States regularly consults with ROK officials on prospects for family reunions and calls on the DPRK to facilitate such reunions. We will also advocate for the inclusion of Korean-Americans if reunions resume.”

추진위는 “이날 면담이 단순히 면담으로 끝나지 않고, 터너 특사의 이산가족 관련 정책이 조속히 시행돼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VOA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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