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지휘자 '에버(EveR)6'가 '부재'에서 지휘한 곡, 만다흐빌레그 비르바(작곡)의 '말발굽 소리'입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는 로봇 지휘자 에버6와, 인간 최수열이 지휘자로 나서 각자의 강점을 발휘해 자기 개성을 선보인 공연입니다. 또한 로봇이 지휘자로 나선 파격적 실험으로 예술가의 가치와 역할을 새롭게 성찰해 본 작품인데요. 무대에 지휘자가 없다는 뜻의 ‘부재’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여미순 악장입니다.
[녹취: 여미순 악장] “항상 저희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떤 기획을 하고 어떤 의도로 접근할까?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연주하는 단체니까 당연히 지휘자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 지휘자가 혹시 없는 상황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될 수 있겠느냐는 상상력이 생겼고 그러면 그렇게 우리가 한 번 시도하고 그 시도에 의한 변화를 맛보고, 정말 지휘자가 없어도 연주할 수 있는지, 아니면 지휘자가 꼭 필요한 연주인지 시도해서 예술의 영역에서 그걸 한번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감성 교감형 안드로이드 로봇 지휘자 에버6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손을 잡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선 결과물인데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녹취: 여미순 악장] “로봇의 데이터를 입히기 위해서 저희 쪽에서 지휘자 한 분이 6개월 동안 모션 캡쳐를 열심히 하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서 로봇에 입력했고요. 단원들하고 실제 오케스트라 연습하는 과정이, 한 일주일 전에 만났는데요. 가장 단순한 동작만을 가지고 우리하고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지휘가 좀 디테일했어요. 그래서 신기해하는 단원들이 많았었고, 연습하면서 물론 처음에는 서로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인간 지휘자도 마찬가지거든요. 인간 지휘자도 처음 만났을 때는 완벽하게 맞진 않아요. 근데 단원들 역시 사람이든, 로봇이든 연주자는 지휘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또 교감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그게 굉장히 잘 이루어졌었어요.”
에버6는 빠르고 반복적인 동작을 오류 없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곡을 선정할 때 단순한 동작만을 필요로 하는 곡을 선정했다고 말했고요. 이번 공연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공존하는 사회에서 우리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 의미 있는 공연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여미순 악장] “저희가 어떤 공연이든지 준비할 때 우리만의 잔치가 되면 안 되고, 최초의 로봇 지휘자가 저희하고 연주하잖아요. 매우 큰 의의도 있지만 이게 밖에서 보는 시각이 그냥 일회성 이벤트로 비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같이하면서 도전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 연주회를 마련했는데 저희가 온갖 정성을 다한 그 정성이 정말 관객들과 또 밖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굉장히 좋은 시선으로 지금, 이 연주에 대해서 평가받고 있어서 정말 우리한테 끝없는 예술의 영역에서 도전과 시도를 다시 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부재’에서는 에버6와 최수열 지휘자가 각자의 강점을 발휘한 무대를 선보인 뒤 한 곡을 동시에 지휘하는 협업 공연을 했는데요. 협업한 곡이 바로 손일훈 작곡가의 신작 ‘감’이고요. 위촉 작곡 의뢰를 받았을 때 손일훈 작곡가는 고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손일훈 작곡가] “일단 무조건 하고 싶은 생각은 확실했고요. 그런데 의문투성이었죠. 왜냐면 지휘자가 두 명 필요한 곡은 거의 없거든요. 한 악단의 두 지휘자가 한 무대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래서 명분을 찾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연주자는 결국 사람이니까요. 로봇이 아무리 칼같이 박자를 계산해서 지휘한다고 할지언정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고 결국 표현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 로봇이 지휘하는 것을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작 ‘감’은 정해진 시나리오나 악보가 없습니다. 에버6는 곡이 연주되는 동안 일정한 속도와 박자로 지휘했고요. 최수열 지휘자는 연주자들과 실시간으로 지휘, 표정, 몸짓을 통해 교감하며 곡을 완성했죠.
[녹취: 손일훈 작곡가] “일단 로봇이 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지휘자가 두 명이 필요한 곡을 만들어야겠죠. 그러면 한 명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도움 되는 위치가 돼야 하니까 그게 로봇이 우리한테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로봇은 일정한 패턴을, 사람이 일일이 그렇게 기억하지 않아도 될 패턴을 로봇이 지휘할 수 있게 맡겨두면 사람은 그거를 신경 쓰지 않고 딴 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거는 예술 영역에서 ‘감’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거를 최대한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어 보고자 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럼, 직접 에버6와 처음 만난 소감은 어땠을까요?
[녹취: 손일훈 작곡가] “생각보다 놀랐어요. 생각보다 지휘의 동작이 굉장히 깔끔했고요. 왜냐하면 제가 생각했을 때는 분명히 이것은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분야고, 뻣뻣하리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불쾌한 골짜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부드러워도 이상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곡이 아니고 여기서 지금 연주하는 다른 곡들이 있잖아요. 에버6만 지휘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곡들을 제가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알 수 없는 희열감이 있었습니다. 로봇도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기술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고 대체된다, 이거에 대한 공포 이런 거는 별로 없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손일훈 작곡가는 과학기술과 예술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려있다고 말했고요. 그렇기에 ‘감’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손일훈 작곡가] “박사님들처럼 로봇을 연구하시는 분들한테 약간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고 저는 생각해요. 로봇의 가능성이 인간의 어느 부분까지 따라올 수 있느냐? 왜냐하면 지금 이 ‘에버’는 사실 지휘자를 대체하기 위해 나왔잖아요. 그러면 언젠가는 작곡을 대체하기 위한 로봇도 분명히 나올 거예요. 이미 사실 많이 나와 있고요. 이미 그렇게 공연을 많이 올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앞으로 더 대중화될 건데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사실 이게 정답은 없잖아요. 기계가 연주하는 거에 우리가 교감하고 감동한다고 해서 전혀 잘못된 것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열린 사고 방식과 새로운 기술로 인해서 각자가 생각을 얻을 수 있는 공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공연을 본 관람객은 지휘와 같은 창의적인 예술 분야는 아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지 않겠냐고 말했고요. 앞으로도 과학 기술의 발전이 문화와 예술을 더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이인서 학생] “아버지하고 왔어요. 로봇이 과연 인간 지휘자보다 더 지휘를 잘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멀었다… 디테일이나 이런 부분이 아직 약간 덜한 것 같아서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녹취: 이현태 씨] “맨 처음에 로봇이 좀 무섭게 생겨서 근데 요즘에 AI가 워낙 유행이기도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직업이, 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좀 걱정되고 conductor(지휘자)를 통해서 관객이랑 소통이 가능한 것 같아서 로봇은 그게 지금 가능하지 않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지휘자를, 로봇이 지휘자 자리에 있는 것을 보니까 그거 자체만으로 되게 좀 흥미로웠고 재밌게 봤습니다.”
[녹취: 황백영 씨] “특히 로봇이 지휘한다고 해서 미흡한 점은 있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 나갈까 궁금해서 왔습니다. 로봇의 적당한 곡, 짧게 연주했는데 하여튼 시도는 상당히 참신하고 좋았습니다. 전적으로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일부분은 그쪽에 넘기고 또 사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이렇게 지금 보면서도 로봇과 사람 지휘자 선생님하고 그런 느낌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녹취: 양경숙 씨] “곡 자체는 그냥 재미있고 어쨌든 프로그래밍해서 했을 테니까 기계적인 호흡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그거는 손색없이 잘 맞았다고 보고 감정의 교감 그런 거는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쳐다보기는 하지만 지휘자가 안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예전에 전통 음악은 굳이 지휘자가 없이도 호흡을 맞춰서 했던 음악이 대다수였었기 때문에 공존해서 가면 더 다양성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