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최근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의 VOA 인터뷰 내용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인권특사 지명 등 미국을 의식한 것이라고 한국에 망명한 전직 북한 외교관들이 지적했습니다. 전직 미국 관리들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한이 정직한 논의를 하고 싶다면 국제 인권 관계자들의 방북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한국 국회 태영호(국민의힘) 의원은 1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 지도부가 최근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한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 관련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 의원은 특히 북한 외무성이 지난 31일 홈페이지를 통해 VOA와 인터뷰한 제임스 히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을 비난하고 사무소 폐쇄를 주장한 것도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태영호 의원]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했기 때문에 김정은도 지금 VOA 보도의 화법과 기조에 대해 더 촉각을 세우고 볼 것입니다. VOA 한국어 방송은 북한이,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방송하자마자 그것을 바로 출력합니다. 한국말이니까 번역이 필요 없잖아요. 바로 출력해서 외무성 내 모든 간부에게 회람문건으로 돌립니다. 바로바로. 그리고 묶어서 김정은에게 차트로 계속 올라갑니다.”
태 의원은 VOA가 독립적인 편집권이 있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히난 소장과의 인터뷰도 새해를 맞아 자체적으로 추진했다 하더라도 북한 지도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보도는 미국 정부의 기조와 움직임을 잘 파악해 보여주기 때문에 북한과 관련해 특정 사안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면 매우 민감하게 주시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태영호 의원] “왜 VOA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냐면 VOA의 보도 기조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VOA가 만약 인권에 관한 보도 수위에 강도를 높이면 북한 정부에선 아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기조를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구나 이렇게 VOA 보도를 통해 미국의 정책 방향을 진단합니다. 왜 VOA가 이 사람(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하고 인터뷰를 해서 이런 소재로 썼을까? 이런 식으로 보는 거죠. 그래서 일반 대한민국의 통신이 보도하는 것보다 몇 배로 북한은 VOA를 주시합니다.”
북한 외무성은 앞서 조선인권연구협회 장철호 연구사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소장이 VOA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인권 감시와 책임추궁 방도 모색 등 사무소의 주요 사명을 떠벌였다며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 사무소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강압 채택된 인권 결의의 산물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실행도구”, “반공화국 인권 모략소동의 앞잡이”, “미국의 사무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전체 인민이 덕과 정으로 화목한 나라, 인권이 제도적이고 법률 실천적으로 훌륭히 보장하는 국가”라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히난 소장은 지난달 VOA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모든 나라가 인권 문제가 있지만 북한은 이를 진전시킬 시민사회조차 없다며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의 임무는 인권 침해에 대한 감시와 기록, 피해자들을 위한 책임규명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었습니다.
히난 소장은 북한 외무성의 비난에 관한 VOA의 논평 요청에 “언급할 것이 없다”며 “인터뷰를 했고 그것이 응답”이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에 대한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확연히 다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2014년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규명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권고에 따라 서울 사무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많은 나라가 북한의 중대하고 광범위하며 조직적인 인권 침해에 대해 ‘충격적’이란 반응을 보였고 결의안은 표결을 통해 찬성 30개국, 기권 11개국으로 채택했습니다.
반대한 나라는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 쿠바 등 6개국에 그쳤습니다. 강압 채택이란 북한의 주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2일 VOA에 “전체 유엔인권 시스템의 목적은 인권을 국제적으로 증진하고 발전시키며 위반 사항을 감시·기록 및 보고하고 책임규명에 대한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도 “인권 조약 비준과 유엔 회의 참석을 통해 이 체제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 “The purpose of the entire UN human rights system is to promote and further human rights internationally, to monitor, document and report on violations and to support efforts at accountability. North Korea is a part of this system through its ratification of human rights treaties and participation in UN meetings.”
코헨 전 부차관보는 또 “북한이 이 제도를 비난하는 이유는 수십 년 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러온 북한 고위 관리들, 강제수용소 책임자들, 하급 관리들을 재판하는 데 필요한 증언과 위성사진 등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2019년 한국에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 대리도 비슷한 지적을 하면서 북한의 유엔 사무소 폐쇄 주장은 한국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이는 연장선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사대리] “한국과 관련된 게 얽혀 있으면 좀 적대적인 언행이 많이 나옵니다. 서울에 있는 유엔 인권사무소이지만 북한만을 딱 조준한 북한만을 명중하고 서울 유엔인권사무소가 존재하는 듯한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까부셔라 하는 식으로 대응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 전 대사대리는 북한 외무성이 3과에서 인권 문제를 다루고 2015년에는 국제기구국장을 지낸 리흥식을 인권담당대사로 임명해 외부의 인권 공세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외무성이 인권에 대해 반박할 때 자주 인용하는 조선인권연구협회, 사회과학원 법률연구소도 사실상 이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인권담당대사가 실제로 활동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7년 북한을 방문했던 카타리나 데반다스 아길라 당시 유엔 장애인인권 특별보고관은 방북 후 설명회에서 북한 외무성 인권담당대사(Ambassador for Human Rights)와 외무성 인권·인도주의 과장(Division Director of Human Rights and Humanitarian Issues) 등을 평양에서 만났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통일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북한 기관별 인명록과 주요 인물정보를 보면 외무성 내 인권담당대사 직책이나 인권·인도주의과는 없어 대외 홍보용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 1호인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2일 VOA에 이런 설명을 하며 북한이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응해 전담팀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영환 전 부원장] “인권·인도주의과라는 것은 없습니다. 또 인권담당대사도 순 미국이나 서방의 인권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인데 그 사람이 보통 때는 다른 일을 하다가 인권회의 있을 때 입장 발표하고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인권·인도주의과나 인권대사나 조선인권연구협회나 모두 똑같은 단체입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 공세가 강해질 것이라고 판단해 외무성 안에 인권 대응 TF 상무조를 만들어 거기서 대응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고 전 부원장은 북한 지도부가 가장 아파하고 숨기고 싶은 인권에 대해 계속 국제적으로 환기하고 압박해야 “북한도 경각심을 갖고 자의든 타의든 변화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고영환 전 원장] “계속 인권 문제를 지금보다 더 구체적 자료로 국제사회에서 여론화하면 북한은 아무래도 아 이거 정치범수용소를 해체에서 다른 곳에 건설해야 하나, 유엔이나 미국 사람들을 불러서 이런 곳이 없다고 보여줘야 하나 이런 여러 북한의 내부 문제들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도 “전임 문재인 정부처럼 북한을 회유해 장기적으로 인권을 증진하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접근”이라며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사대리] “초보적 인간의 가치마저도 권리마저도 짓밟히고 실현되지 않는 북한 인권상황에 대해 국제사회가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게 내부적 압박에도 도움이 됩니다. 국제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북한이 그나마 이전보다 개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문제, 관련 시설, 인도적 문제, 수감자들의 처우, 심한 고문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것도 하나의 진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인한 북한 정권의 압박감으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한이 인권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와 VOA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는 유엔 외교관들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관심을 환기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왔다”며 사무소가 서울에 있는 것이 유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The fact that the North Koreans are complaining about it, lets me know that you're doing what needs to be done. UN diplomats who are in Seoul have done an excellent job of gathering information and calling attention to the problem of human rights in North Korea. I think it's a good thing to have that office there.”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 정부가 인권 기록에 대해 정직한 논의를 하고 싶다면 유엔인권최고대표,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 국제적십자위원회, 인권 비정부기구들의 방북을 허용해 개탄스러운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