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한의 인권과 인도주의 상황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떠올릴 만큼 악화했다는 평가들이 나온 가운데 이에 대한 미국과 한국, 유럽연합 등 각국의 우려와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한국 새 정부의 북한인권 정책 전환은 긍정적 움직임으로 평가됐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습니다.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분야별로 돌아보는 VOA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개선 노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과 각국 정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올해 다양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인도주의 상황이 매우 악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제77차 유엔총회에 각각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인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3년째 이어진 북한 지도부의 과도한 국경 봉쇄와 내부 통제 강화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이 가중됐고 주민들의 이동과 표현의 자유는 더욱 악화했다는 것입니다.
구테흐스 총장은 보고서에서 “북한의 국경 봉쇄, 국내 이동의 자유와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제한으로 인해 북한 정부가 주민들 사이의 정보와 생각의 흐름을 더 억제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구테흐스 총장 보고서] “For instance, the closure of the country’s borders and restrictions on freedom of movement and social interaction within the country have enabled the Government to further suppress the flow of information and ideas among its people.”
살몬 보고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보건 위기와 완전한 고립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과 고난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며 보고서를 통해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
[살몬 보고관] “The Special Rapporteur has great sympathy for the sacrifice and hardships people have had to endure during the COVID-19 health crisis and under complete isolation.”
북한 주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런 우려는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확인됐습니다.
세계 100여 개 나라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2019년과 올해 접경 도시 회령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비교한 결과 9.2km에 달하는 새 철조망이 설치됐고 이 일대 초소는 5개에서 169개로 증가한 게 확인된 것입니다.
이 단체 윤리나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은 코로나 팬데믹을 이용해 북한을 세계로부터 더욱 봉쇄하고 식량과 다른 물품의 수입과 분배에 대한 정부의 완전한 통제를 복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리나 HRW 선임연구원] “Kim Jong Un has been using the pandemic to further seal North Korea off from the world and restore the government’s complete control over imports and distribution of food and other products,”
미국의 민간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는 연례보고서에서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인 코로나 팬데믹 대응으로 주민들은 바깥세상으로부터 훨씬 더 고립됐고 경제는 파탄났다며 북한은 “새로운 암흑시대”를 맞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의 인도주의 기구들도 한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유엔의 5개 인도주의 기구는 지난 7월 발표한 공동 보고서에서 북한 전체 인구의 41.6%에 달하는 1천 70만 명이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15일 열병식 연설에서 인민의 허리띠를 다시는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한 지 10년이 됐지만 인민생활은 더 악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지난 19일 한국 취재진에 북한 정권이 올해 전 주민이 46일 동안 먹을 식량 비용 2억 달러를 기록적인 횟수의 미사일 발사에 허비했다며 함경도 지역에서는 다수의 아사자까지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우려와 성토는 다시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표결 없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으로 이어졌고 유엔 안보리는 비공개회의를 또다시 개최했습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지난 9일 31개국이 동참한 장외 공동성명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무책임한 행태를 거듭 비판했습니다.
“북한의 억압적인 정치적 분위기는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영양실조 등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자원을 무기 개발로 돌리는 강압적인 통치 체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토머스-그린필드 대사] “The country’s repressive political climate allows a coercive system of governance that diverts resources to weapons development – even as North Korean citizens suffer from severe economic hardship and malnutrition.”
국무부 대변인실도 VOA에 보낸 성명에서 “북한은 계속 자국민을 착취하고 불법 핵무기와 탄도무기 프로그램을 증강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로부터 재원을 전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대변인실 관계자] “The DPRK continues to exploit its own citizens and divert resources from the country’s people to build up its unlawful nuclear and ballistic weapons program,”
국제 비정부기구들 사이에서는 독재정권을 보호하려는 무기 개발을 위해 귀중한 국가 재원을 전용하는 것은 “북한 인민의 권리 전체에 대한 공격이자 범죄 행위”란 비판까지 제기됐지만 북한 지도부는 이를 전면 반박했습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지난 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 발언을 통해 국제사회가 지적하는 인권 침해들은 “북한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면서 “우리는 인민대중제일주의 원칙을 갖고 사회생활 전반에 이를 구현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녹취: 김성 대사(유엔총회 제3위원회)] “They do not exist, nor can they ever exist in our country. We have a people-first principle. It's fully embodied in all spears of the social life.”
영국의 인권단체 ‘인덱스 온 센서십’은 지난 1일 김정은 정권의 이런 무책임한 정책을 비판하며 온라인 투표를 통해 뽑는 ‘2022 올해의 독재자’ 후보에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올렸습니다.
미국의 인권 전문가들은 29일 VOA에 날로 악화하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가장 큰 우려 사안으로 지적하면서도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가장 긍정적인 변화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새 정부의 태도 변화를 꼽았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Probably the most positive thing is the change in attitude of the Government of South Korea following the election. The most symbolic indication of that was the appointment of the ambassador for international human rights for North Korea,”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장기간 공석 중이던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 대사를 임명하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재동참하는 등 과거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나라 안팎에서 북한 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캄보디아에서 열린 미한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는 최초로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의 즉각적 석방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정부 주도로 북한인권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회의가 계속 열리고 있으며 유엔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을 환기하는 활동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지난 10월 유엔총회 부대 행사로 유럽연합과 공동 개최한 행사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만큼 주목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I strongly believe that the DPRK the human rights situation deserves as much attention as its WMD program. The DPRK's nuclear program and its human rights situation are like two sides of the same coin since both are directly tied to the unique regime's preservation. Therefore, the notion that the DPRK's human rights is a second tier to North Korea's nuclear issue should be dispelled.”
황 대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인권 상황은 둘 다 독특한 북한 정권의 보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서 “북한 인권이 북핵 문제에 이은 “2순위(second-tier)’라는 관념은 불식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가 개최한 북한인권 행사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9일 VOA에 한국 내 분위기가 문재인 전 정부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전 총장] “ The South Korean government becoming interested again in North Korean human right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no longer harassing North Korean escapees or North Korean human rights organizations. These are all very positive developments,”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더 이상 탈북민이나 북한인권 단체들을 괴롭히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과거 남북 관계에 전념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가 탈북민과 인권단체들에 대해 특별 사무조사를 하는 등 활동을 억제하는 조치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었습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또 김정은 남매의 무책임한 정책 실패가 야기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을 가장 긍정적인 측면으로 꼽았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전 총장] “The most positive development is the people of North Korea surviving despite their regime.
People are not dying, the same way that they died in the 1990s because they have learned they have developed coping mechanism,”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방안을 스스로 터득하고 개발했기 때문에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와 같은 방식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편 인권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올해 가장 우려하는 사안 중 하나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하지 않은 것과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킹 전 특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보다 인권에 관해 강력한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하지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은 놀라울 정도로 부진했고 의지나 관심의 전반적인 부족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성명] “There’s no getting around the fact that Biden Administration’s efforts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ssues has been incredibly lackluster, and revealed an overall lack of commitment or interest. There’s no other explanation for the administration’s abject failure to appoint a new Special Envoy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to replace the long-departed Robert King.”
그러면서 “오래전 떠난 로버트 킹 전 북한인권특사를 대체할 새 특사 임명에 행정부가 비참하게 실패한 데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일각에선 북핵 협상 교착 국면에서 인권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협상이 시작되면 침묵하는 등 인권 문제를 핵 협상의 불쏘시개처럼 사용했던 과거의 전례를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국무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고 미국은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기존의 원칙을 올해 계속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아웃트로: 2022년을 마무리하면서 VOA가 준비한 다섯 차례 기획보도, 오늘 순서를 마지막으로 모두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