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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전명운 (4) 스티븐스 저격과 재판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전명운 (4) 스티븐스 저격과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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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시간입니다. 전명운 네 번째 시간으로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이번에는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명운 네 번째 시간으로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공립회관에 모인 총대들과 한인들은 1908년 3월 22일 제2차 한인공동회를 개최했습니다.

우선 총대들이 스티븐스와의 면담 내용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발표한 성명서에 대해 반성이나 취소할 의사가 없으며, 한국인은 우매하고 독립할 자격이 없고, 일본이 보호국화 하지 않았으면 러시아가 강탈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총대들이 응징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공립회관에 모인 한인들을 여기저기서 “도저히 스티븐스를 보낼 수 없으니 내가 죽이겠다”라고 나섰습니다.

그를 처단하겠다는 말은 전명운이 제일 먼저 했습니다. 이어 허승원, 신영구, 이용규 등이 스티븐스 처단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다음으로 조용히 벽에 기대어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장인환이 결심을 한 듯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면서 스티븐스를 저격하기 위한 총을 한 자루 사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양목은 연설을 통해 스티븐스 저격을 실행하려면 침묵 중에 암행하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문양목의 연설이 끝나자 공립회관에 모여 있던 한인들은 스티븐스를 개인적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해산했습니다. 그러니 제2차 공동회 해산한 뒤 바로 두 단체가 공동으로 비밀회의를 통해 처단 계획을 수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전명운은 신문에서 난 스티븐스의 사진을 준비하였으며 그를 저격하기 위해 권총을 챙겼습니다.

처소로 돌아온 전명운은 스티븐스를 국가의 적으로 처단할 계획을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으로 떠나는 스티븐스의 사진, 이동 경로와 차편 등을 확인하며 거사를 준비했습니다.

1908년 3월 23일 아침 일찍 전명운은 권총을 가지고 오클랜드 도선 대합소인 페리 빌딩에서 스티븐스를 기다렸습니다.

9시 30분 자동차에서 재미일본영사관 영사가 먼저 내리고 이어 스티븐스가 내렸습니다. 이에 전명운은 총을 꺼내 스티븐스에게 발사했지만, 발사되지 않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전명운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장인환이 스티븐스 쪽을 향해 권총 3발을 쏘았습니다. 이중 첫발은 전명운의 어깨 쪽에 명중했고 연이은 2발은 스티븐스의 오른쪽 어깨와 아래 복부를 각각 맞추었습니다.

이후 전명운과 장인환은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총에 맞은 스티븐스는 1908년 3월 24일 탄환 제거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음 날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저격 다음 날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총에 맞고 병원에 입원한 전명운을 찾아서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전명운은 다음과 같이 거사 이유를 진술했습니다.

[낭독: 전명운] 성명은 전명운. 연령은 25세. 이곳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다. 며칠 전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한국 사정에 관해 신문기자 회견을 가진 바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스티븐스는 “한국민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환영하고 있다” 등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러한 거짓말을 미국 국민에게 퍼뜨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는 그의 발언을 듣고 그를 죽이고 나도 자결하기로 결심했다.

1908년 3월 27일 치료 중인 전명운은 살인미수 혐의로 샌프란시스코 경찰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4월 3일 공판정에서 전명운은 다음과 같이 스티븐스 저격 과정을 진술했습니다.

[낭독: 전명운] 나는 그를 죽이고 나도 또한 죽고자 결심하였다. 나는 가지고 간 초상과 대조하여 이 신사가 내가 찾는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그가 차를 내리려는 즈음에 저격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총은 회전하지 않았으므로 곧 총으로 그를 구타하고자 하였고 될 수 있으면 그의 두 눈을 잃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를 때리려고 하여 그 찰나 나는 도망쳤다. 그가 나보다 세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티븐스 배후에서 누가 나를 사격하였다. 나는 단독이다. 누구에게도 나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단독인 것을 이에 거듭 말하여 둔다.

그런데 전명운은 이후 재판을 통해 보석으로 석방되는데요. 한국 독립운동사연구가인 이도형 박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녹취: 이도형 박사] “전명운 의사가 의거 이후에 바로 체포되어서 그때 장인환 의거에 어깨에 총을 맞아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곧바로 회복이 됐습니다. 그래서 경찰 법원에 가 가지고 인제 구속여부를 심사를 받았는데 증거자료가 없었어요. 직접적인 증거자료를 스티븐스를 위해했다는 직접적인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석방이 됐고 그 조사를 하려면 직접적인 조사를 하려면 당시 증언을 해줬던 분들한테 증언을 받아야 하는데 증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끌다가 전명운 의사는 그 당시 1908년 10월 정도에 국립신보에 보면 보방이 됐다는 그러니까 풀려났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걸로 봐서는 전명운 의사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어떻게 하지 못해서 풀려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증인들은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저격하는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증거물로 제시된 권총도 전명운의 것이란 명확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특히 장인환이 전명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증언한 것이 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검찰 쪽이 주장하는 공모 사실을 부인하고, 장인환 단독 행위이고 전명운 자신도 총을 맞은 피해자임을 강조했습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에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두 사람이 사전에 저격을 공모했냐는 점입니다.

먼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가인 이도형 박사는 두 사람이 분명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임에는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이도형 박사] 의거가 일어난 3 23 체포됐을 분이 같은 현장에 있었는데 현장에 분이 미리 계획을 하고 나왔는지 우연히 분이 만났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도 정확하게 결정을 없어요. 여기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을 종합해서 봤을 분이 샌프란시스코에 1908 당시에 100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분이 모를 리는 없었을 같아요. 그렇지만 분이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장인환 의사는 대동보국회 소속의 회원이었고, 전명운 의사는 공립협회 회원이었어요.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단체에서 활동을 했고 그래서 얼굴을 알고 있었고 안면이 있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둘이, 분이서 아주 친하다던가 서로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다라는 것이죠.”

안면은 있었지만,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도형 박사는 또 스티븐스 저격 과정을 봐서도 두 사람이 공모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이도형 박사] 그리고 분이 그런 사이기 때문에 공모했을 것이라는사전에. 전명운 의사가 먼저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그리고 실패하면 장인환 의사가 나선다 이렇게 계획을 했다는 그런 것은 아닌 같아요. 전날 공동회에서 스티븐스를 처단하겠다고 전명운 의사가 얘기를 하니까 장인환 의사도 뜻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 분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나서 전명운 의사가 스티븐스를 처단하려고 먼저 총을 들었는데 총이 불발이 됐죠. 총이 망가져서 총으로 스티븐스를 구타하려고 얼굴을 치려고 그랬는데 그걸 보고 장인환 의사가 총을 거죠. 그래서 첫발이 전명운 의사에 맞고 번째, 번째 총알이 스티븐슨에게 맞았는데 이런 것을 봐서는 미리 공모를 했다고 하면 자기 동료인 전명운 의사를 수가 없겠죠.”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법원도 전명운과 장인환의 공모 여부를 검토했는데요. 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도형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이도형 박사] 그런데 같은 동포가 스티븐스를 위해를 가하는 것을 보고 장인환 의사가 총을 것이 전명운 의사에 맞았고 그다음에 두세 발이 인제 스티븐스에 맞았는데 이런 상황을 봤을 분이 사전에 공모했다던가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경찰에서도 다음에 법정 다툼에서도 최초에 문제가 것은 사람이 공모했느냐는 공모 자체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에 대한 증거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을 봐가지고는 공모했다고 보기는 힘들 같아요.”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오늘은 전명운 네 번째 시간으로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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