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미사일 도발 가운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꺼내든 남북 정상회담 카드에 워싱턴은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력시위와 유화책을 병행하는 ‘냉온탕’ 전략으로 종전선언과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간절함을 악용한 북한식 유인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전직 관리들을 포함한 한반도 전문가들은 양극단을 오가는 북한의 수사에 한국 정부가 계속 휘둘리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을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던 북한이 하루 만에 돌연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는 새 입장을 내자 한국 정부에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한 기대가 흘러나왔습니다.
특히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즉시 “북한이 대화 여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미-한 연합훈련을 “암초”로 표현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혼란스러운 대남 메시지에 한국 정부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며, 김여정의 정상회담 언급을 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에 던지는 ‘미끼’로 진단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김여정이 내건 ‘공정성’이니 ‘존중’이니 하는 정상회담의 조건들은 다름 아닌 북한의 각본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는 미-한 동맹과 연합훈련 종식을 뜻하는 암호”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Kim’s conditions of “impartiality” and “mutual respect,” are right out of the North Korea playbook. These are codewords for ending the US-ROK alliance and certainly ending US-ROK military exercises.”
“김여정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흔들어 보인 것은 문 대통령이 양보하고 바이든 행정부에 제재 해제를 촉구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Kim was dangling a possible summit to press President Moon to make concessions and/or seek the Biden administration to lift sanctions.”
이처럼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 상대를 ‘길들이는’ 듯한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어떤 막말이나 도발에도 대응을 삼간 채 남북 관여의 기회만을 모색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와 종전선언, 추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열망을 이용할 기회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이 세 가지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이를 악용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 think what's happening here is that Pyongyang and the North Koreans see an opportunity to exploit the eagerness of Seoul in pursuing renewed dialogue with North Korea, Seoul's eagerness in promoting this idea of an end of war declaration and Seoul’s obvious eagerness in having another summit with Kim Jong-un. The fact that Seoul has been devoting so much energy to all three of those pursuits—I think the North Koreans have looked at that and said, you know what, here's an opportunity for us to exploit this.”
구체적으로는, “대화 재개 과정에서 한국이 북한을 위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미국의 입장 변화를 설득할지 알아보려는 게 북한의 목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and exploit it in a couple of ways to find out what South Korea might be prepared to give North Korea or do for North Korea in the course of restoring dialogue but also and no less importantly, to what extent, Seoul might be an eager participant in an effort to try to convince the United States to change its own position.”
더 나아가 북한이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유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내년 3월 한국의 차기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정상회담 추진을 국내 정치에 이용할 빌미를 제공하려 한다는 주장입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북한이 진심으로 양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기보다 다가오는 한국의 민주적 선거를 방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 “I think North Korea may be more interested in disrupting South Korea’s upcoming democratic election than sincerely wanting to talk about concessions.”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한국 KBS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에서 설사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이어받아서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마지막까지 그러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군과 군사 장비의 철수가 동반되는 종전선언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며 “김씨 정권은 문 대통령이 임기 종료 전에 협상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North Korea is interested in an end of war declaration if the withdrawal of U.S. troops and military equipment is included in the process. The Kim family knows that President Moon wants a deal before his term ends.”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원한다면 정상회담이나 종전선언 협상에 앞서 김정은에게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If Moon wants to restore trust with Pyongyang, he should urge Kim Jong Un to take irreversible steps toward denuclearization before any summit meetings or negotiations for an end of war declaration.”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핵 위협의 영향권 안에 있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많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남북 정상회담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여기서 논의되는 의제는 미-일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미-일 두 나라의 관심사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 전 IAEA 사무차장] “Certainly a North-South summit is important, but its agenda cannot be isolated from the relations of North Korea with Japan and the US. and the concerns of those two countries.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동아시아연구소장도 “문 대통령이 돌파구를 원하고 있고, 북한은 더 많은 자원이나 제재 완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하지만 남북 간 합의가 다른 관련국들, 특히 미국에 어떤 효용을 줄지는 쉽게 알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신뢰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켄트 칼더 존스합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동아시아연구소장] “I can see that President Moon wants a breakthrough, and I can imagine that North Korea desperately wants more resources and/or relief from sanctions, but I cannot easily see what the utility of an agreement would be for other players, especially the United States. There is just a lot of skepticism about North Korea's credibility.”
전문가들은 4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2018년 성사됐던 3차례의 남북 정상 간 만남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어떤 실익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추가 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정상 궤도에 들어설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북한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으며 목적 달성을 위해 완전히 다른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North Korea is playing a very different game here. North Korea is not interested in denuclearization. North Korea is interested in furthering its own goals, and they have made clear what those goals are. One of those goals with respect to South Korea is eliminating what Kim Yo-jong called the double standard the other day. What does she mean by that?…What North Korea wants to do is to normalize the idea that the North and South can continue to talk even while North Korea continues to develop and launch ballistic and other missiles, many of which are aimed at South Korea, and they don't want South Korea to be complaining when they launch these missiles.”
특히 “김여정이 ‘이중기준 철회’를 언급한 것은 남북한이 대화하는 동안에도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등을 계속 개발하고 발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상화’해 한국이 이에 대해 불평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이노넨 연구원은 “단순히 종전선언만으로는 많은 것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와 미래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군비축소로 향하는 북한과 한국의 동시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질적인 조치가 빠진 선언은 정교한 무기 시스템을 계속 구축할 때는 존재할 수 없는 지속 가능한 평화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 전 IAEA 사무차장] “A simple declaration alone on the ending of the war will not bring much. It has to be accompanied with measures taken in walking on the path towards disarmament. Those measures on missile and nuclear programs, current and future, need to be taken simultaneously by North Korea and the ROK. Without practical measures taken, such a declaration could be counterproductive by creating an illusion on durable peace, which does not really exist when parties continue to build increasingly sophisticated weapons systems.”
매닝 연구원도 “이미 남북 정상회담을 3차례나 가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추가 정상회담이 외교적 돌파구로 이어질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Given that we have already had three North-South Summits, I see no evidence that another way would lead to a diplomatic breakthrough.”
무엇보다 “북한이 평화와 비핵화 과정을 재개하는 데 진지하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며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항의하는 동시에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은 대화 재개의 대가로 바이든 행정부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기 위해 저강도 위기를 촉발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I see no evidence that North Korea is serious about restarting a peace and denuclearization process. The simultaneous missile launch at the same time as the DPRK UN rep was speaking at the UN General Assembly and protesting the US “hostile policy” indicates to me that Pyongyang may be trying to stir a mini-crisis to press the Biden administration into making unilateral concessions as the price for renewed dialogue.”
매닝 연구원은 “핵심 문제는 70년 동안 북한과 미-한 사이에 축적된 깊은 불신”이라며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 해도 이는 장기적 사안으로, 단계별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양측 모두의 상호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The core problem is a deep mutual distrust between North Korea and the US and ROK accumulated over 70 years. Restoring trust, if possible, is a long-term exercise, requiring reciprocal actions by both sides that step-by-step could restore trust.”
2018년 2차례의 미-북 정상회담을 비판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남북 정상회담을 미-북 정상회담과 비교할 순 없다”면서도 “나는 과거에 적절한 준비 없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미국의 결정에 우려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은 준비가 지극히 잘 돼 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I was concerned in the past by U.S. decisions to enter summit meetings without, in my view, adequate preparation. And I think summits are best when they're extremely well prepared.”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정상회담에 그런(공정성과 존중) 조건을 내걸 때는 ‘그들이 옳고 우리가 그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모종의 사전 제스처를 (한국으로부터) 기대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추가 정상회담을 하겠다면 수많은 세부 사항을 미리 확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When they do it as a condition for a meeting, I do worry whether they are expecting some kind of gesture in advance, that might imply that somehow they are right and we are wrong. I just feel at this point, going to a fourth summit, it's very necessary to nail down a lot of details.”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1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5월 26일 전격적으로 판문점 2차 정상회담을 가졌고, 9월 19일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가진 뒤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