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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직 관리들 “북한의 ‘적대시 정책’ 주장은 지연전술…협상 때마다 말 바꿔”


지난 2016년 6월 북한 평양에서 대규모 반미집회가 진행됐다.
지난 2016년 6월 북한 평양에서 대규모 반미집회가 진행됐다.

미-북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걸림돌로 지적했습니다. 때로는 제재와 미-한 연합훈련을, 때로는 인권 개선 요구를 비난할 때 줄곧 내세워온 북한의 ‘적대시 정책’ 주장에 대해 미국의 전직 외교 당국자들은 실체가 모호한 ‘지연전술’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북한은 상황에 따라 비난 대상을 바꾸고 확대해온 만큼, 미국은 북한에 정확한 정의를 요구하고 북한의 ‘적대적 행위’를 상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국무부와 백악관, 정보기관 등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전직 당국자들에게 북한의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은 수십 년간 반복돼 온 수사입니다.

가장 최근엔 러시아와의 전략 대화를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지난 20일 발언에서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녹취: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미국 쪽에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지금까지 놓여있던 핵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서 이제는 내려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북한 측 대화 상대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되는 이 같은 요구를 미 협상가들이 ‘적대시 정책 신화(myth)’라고 불러온 건 북한이 문제 삼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시시각각 바뀌어 실체와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의 ‘적대적 의도’ 혹은 ‘적대시 정책’ 비난 대상을 “움직이는 목표물”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 North Korean accusation of hostility, or hostile intent, or hostile policy is sort of a moving target. It's whatever happens to be on their list at the moment that they utter those words.”

적대시 정책 리스트에는 북한이 순간순간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의 어떤 행동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가령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은 1990년대에 북한이 주장한 대표적인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었다고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회고했습니다. 여기에 미-한 연합군사훈련, 대북 제재 등을 추가하는 등 북한은 협상의 성격과 목표에 따라 ‘적대시 정책 리스트’를 수시로 바꾸고 늘려왔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And what's in that category changes depending on the nature of the negotiation and on the nature of the North Korean goals at any one instance.”

이 같은 모호함 때문에 미 협상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 협상의 걸림돌이라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분명히 정의해줄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북한이 25년 동안 비난해온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북한에 자주 물었지만 대답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아직도 그 뜻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 “For 25 years, North Korea has accused the U.S. of having a hostile policy toward the North. We asked often. What does that mean? We never got a reply. So, no, I don't know what they mean by "hostile policy.”

미국에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정작 요구 사항을 구체화해달라는 질의에는 답하지 않는 이런 양상은 최근 진행된 미-북 협상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 때도 미국은 안보 보장, 종전 선언, 적대시 정책의 정의가 무엇인지 북한에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US officials, including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Stockholm meeting say, you know, they tried to get North Korea to define what is a security guarantee, what is an end of war declaration, what do you mean by hostile policy and North Korea just won't define it.”

전직 미 당국자들은 북한의 이런 태도를 ‘전략적 모호성’으로 풀이합니다. 미국이 취하는 어떤 행동과 조치도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에 포함시켜 철회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입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Everything the United States does is part of a hostile policy, anything that the North Koreans don’t like is U.S. hostile policy.”

2011년 방북해 김계관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났던 킹 전 특사는 북한에게는 미국이 하는 모든 행동이 적대시 정책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라면서 의미 없는(meaningless) 수사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반면 북한 관리들을 주로 협상장 밖에서 자주 대면했던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북한이 수많은 불만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비난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한 범위가 정해져 있다며 인식 차를 보였습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North Korea has many different formulations that they use when they are trying to describe what they call the U.S. hostile policy. And it’s pretty clear over the years that they consider many elements of the U.S. approach to the North to be possible…”

자누지 대표는 미-북 간 외교 관계 부재로 평양에 미 대사관이 설치돼 있지 않다는 불만에서 시작해, 대북 제재, 미-한 연합군사훈련, 미군의 핵 위협, 인권 상황 비난과 개선 요구 등을북한이 수년 동안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언급해온 항목들로 꼽았습니다.

다만 북한이 상황에 따라 비난 대상을 바꾸거나 늘려왔다는 전직 미 협상가들의 지적과 달리, 이미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한 광범위한 항목들 가운데 한두가지 요소에 그때그때 강조점을 두는 것일 뿐 큰 틀에서는 일관성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I think it's fair to assume that all of these elements are what they're talking about. You know, at any given moment, the North Koreans have attached more significance or greater priority to one or two of these elements of the abnormal relationship between the US and DPRK but I think the North has been pretty clear
that all of these factors come into play.”

하지만 북한과의 고위급, 실무급 접촉을 두루 거친 미 전직 고위 관리들은 북한의 ‘적대시 정책’ 논리에 일관성이 있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비난과 요구 수준을 훨씬 넘어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터무니없는 조치들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그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룹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이 ‘적대시 정책’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The North Koreans, use the phrase hostile policy, because it can be expanded or contracted depending upon what they want it to mean. The phrase is not intended to be precise, it's intended to be ambiguous, so that they can extend it broadly.”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에 참여했고 이후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북 핵 문제 등을 다뤘던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적대시 정책’을 명확히 규정하는 대신 일부러 모호하게 놔둠으로써 범위를 확대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모든 경제 제재 해제 뿐 아니라 미-한 군사동맹 파기,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 철수,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미-북 외교관계 수립 등 모든 조치를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It means lift all economic sanctions, including bilateral U.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It means end the US-ROK military alliance and the US military presence in East Asia. It means accept North Korea as a nuclear weapons state. It means established diplomatic relations with North Korea. So all of these things are what hostile policy means,

따라서 정의와 범위가 모두 모호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라는 주장은 상황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자 할 때 종종 쓰는 북한의 전략이라는 게 워싱턴의 대체적인 인식입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입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e North Koreans simply use it as a stalling tactic to my mind, much more so than saying something meaningful.”

킹 전 특사는 북한의 ‘적대시 정책’ 주장은 40년 동안 계속돼 왔으며 어떤 의미를 담은 게 아니라 일종의 ‘지연전술(stalling tactic)’로 이용됐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비핵화 의도가 전혀 없는 북한이 비핵화 요구를 하는 미국의 어떤 행동이든 ‘적대시 정책’으로 트집잡아 이를 일축하는데 주력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e North Koreans realize the United States is serious about denuclearization and the North Koreans are not willing to go there. Therefore, whatever the United States does is brushed off as hostile policy.”

따라서 북한이 거듭 걸림돌로 제기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해소해주려는 노력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전직 관리들의 대체적인 입장입니다. 하나의 장애물이 사라지면 또 다른 요구를 들고 나오는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방식이 무한 반복될 것으로 보는 겁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실제로 북한의 그런 우려를 최대한 덜어주려는 노력을 했고, 자신이 초안 작성에 참여해 이를 문서화하는 성의까지 보였지만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위급 회담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적대시 정책’의 정의를 분명히 받아내고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통보하되, 동시에 미국이 상당한 증거를 갖고 있는 ‘북한의 적대시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The United States also have some complaints about things that North Korea does and North Korean hostility, and we can come up with a pretty substantial evidentiary case that would make the case that it is North Korea that is pursuing an extremely hostile policy towards the United States, and towards our allies. We could make that case as well.”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한국과 미국민, 그리고 미국의 이해를 훨씬 자주 공격한 적대적 행위자는 북한이며, 대화를 피하는 쪽도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We could point out it's the North that has been the hostile actor in attacking the South or US or, you know, US interest or US personnel more frequently…Although the US has been criticized for years of unwilling to talk to North Korea, it has always been North Korea that refuses to have meetings.”

한편 북한의 ‘적대시 정책’ 비난의 실체와 범위에 대해 전직 관리들과 다른 진단을 내린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대응 방안과 관련해서도 온도차를 보였습니다. 미-북 외교 관계 수립을 통해 ‘적대시 정책’ 주장에 포함된 많은 요소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다는 접근법입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Something that is on the list of hostility can be taken off the list if the relationship changes for instance the presence of US forces on the Korean peninsula. If the United States lifted sanctions, normalize diplomatic relations and find a peace treaty with North Korea, I've been told by North Korean officials but, they would no longer consider the presence of US forces on the peninsula to be hostile…”

자누지 대표는 북한 관리들과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미-북 관계가 정상화돼 평화 조약이 체결되고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북한에게 주한미군은 더 이상 적대 세력이 아니고 인권 문제 등의 논의도 가능해지는 등 ‘적대시 정책 리스트’에서 적대적 성격이 자연스럽게 묽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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