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기상이변으로 북한의 식량 상태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구 수와 곡물 수요 등 북한의 정확한 통계 발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한국 정부가 추진하던 쌀 지원은 잠정 중단됐습니다. 서울에서 안소영 특파원 입니다.
올해 북한의 1인 당 하루 배급량이 최소 권장량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평양 주재 세계식량계획 WFP가 밝혔습니다.
WFP는 ‘북한 농업과 식량안보’를 주제로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관하는 비공개 토론회에 보낸 자료에서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평균 1인 당 하루 380g이었던 식량배급량이 올해는 300g으로 줄었으며, 특히 7월과 8월에는 290g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북한 당국의 목표치인 573g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유엔의 최소 권장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최근 10년 사이 최악이라고 밝힌 지난 5월 보고서를 상기시키며,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2018-2019년도 북한 경작지는 120만 ha로 지난 5년 평균치보다 5%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농경지가 47만1천 ha, 옥수수 재배지가 50만8천 ha로 평균 규모 49만6천과 53만5천 ha를 밑돌았다는 겁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북한의 식량난이 단기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미국 농무부가 위성을 통해 올 여름 북한의 경작지 상태를 파악한 결과, 농작물에 중요한 요소인 기온과 강수량, 일주량 모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결론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금년 작황은 평년보다 못할 것이다. 가을에 생산되는 곡물이 한 해 곡물량의 90%를 차지하거든요.”
가을에 수확하는 4개 작물인 쌀과 옥수수, 콩, 감자 생산량도 올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에도 북한의 식량난은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미국 농무부는 이날 북한의 올해 쌀 생산량이 136만t으로 1994년 이후 가장 적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여름에는 홍수와 태풍, 봄과 가을에는 건조한 기후 탓에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농산물 생산 시설과 기술, 비료, 씨앗의 부족 현상이 북한의 식량 사태를 악화시킨다며 과거 1980년대 보다 나빠진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농무부는 북한 농업 실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북한의 정확한 통계가 없는 것은 큰 도전이라고 전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정확한 인구 수와 곡물 소요량 등을 정확히 공개해야 하며, 이를 토대로 국제기구들이 대북 지원에 대한 효과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태진 박사는 무엇보다 북한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산물 생산 시스템을 갖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는 만성적인 북한 식량난을 해소할 척도라는 겁니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어쩔 수 없이 곡물이 전체 농산물 가운데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의 식생활 패턴에 맞춰 나갈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북한 주민의 소득이 높아지면 점차 곡물 비중을 줄이면서 단백질과 지방 비율을 높일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채소, 축산물, 과일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큰 그림입니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 이후 북한의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만큼, 시장 기능을 활성화시킬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권 박사는 북한 주민들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장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에 생산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시장을 통한 ‘마켓 엑세스’ 관점에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주민들이 농업 외에 다른 산업 쪽에 활동을 늘리면서 예를 들어 제조업 쪽에 비중을 높이는 그런 정책이 들어가야겠죠.”
권 박사는 이어 대북 식량 지원은 달라진 북한의 경제체제와도 맞물려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북한 주민들이 소득을 높여 그 돈으로 식량을 사먹는 구조가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한국 정부가 추진하던 한국산 쌀 지원이 무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WFP를 통한 식량 지원은 북측의 공식 입장이 확인되지 않아 준비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면서, 향후 북측 입장을 확인한 후에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측과의 협의, 수송 선박 확보, 쌀 지원에 필요한 절차를 이행하는 소요 기간 등을 감안하면 당초 목표였던 9월 말 종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의 식량 상황을 고려해 WFP와 협의한 결과 한국산 쌀 5만t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WFP가 북한과 협의를 통해 7월 말 식량을 실은 첫 배를 출항하고, 9월에는 모든 지원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7월, 미-한 연합훈련을 이유로 한국의 쌀 수령에 부정적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WFP는 16일 한국의 대북 쌀 지원에 대한 북한과의 진행 상황을 묻는 VOA의 질문에, 협의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