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지난 4월 개정된 헌법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새 헌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의 대표’ 로 명문화했습니다. 또 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공식화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새로운 헌법이 공개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4월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헌법을 최근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새 헌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무위원장직이 “국가를 대표한다 “고 명시한 부분입니다.
개정 헌법 100조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영도자’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헌법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돼 있어 대외적 국가수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규정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명실상부한 국가수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국가기구 가운데 100조가 국무위원장의 역할인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수뇌로서 위치를 올려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새 헌법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돼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에는 헌법상 국무위원장과 상임위원장 두 직책이 모두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국무위원장(김정은)은 실질적인 국가수반의 지위를 모두 갖춘 ‘최고영도자’로,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최룡해)은 상징적인 외교 업무만 맡도록 내부 업무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국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김정은 위원장이 체제를 정상화한 겁니다. 최고 통치자,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국무위원장이 맡고 대사 신임장이나 이런 잡다한 업무는(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도록 한 겁니다.”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의 지위를 갖춘 최고 영도자로 명기한 데 대해,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분석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할 경우 향후 미국과의 핵 협상, 평화 협상의 서명 권한이 최룡해 상임위원장에게 갈 소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 정상과의 회담이나 조약의 비준, 폐기 등 국가의 대표 역할을 국무위원장이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서명 권한의 실효성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특히 향후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에 도달했을 때 서명 주체로서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정 헌법의 또다른 특징은 김정일 시대를 상징하는 ‘선군사상’이나 ‘선군정치’같은 용어가 삭제된 점입니다. 이는 군부가 아닌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인덕 전장관은 밝혔습니다.
[녹취: 강인덕] ”군부에서 당으로, 당에서 다시 국가 중심으로 가는 모양새인데..”
과거 헌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 한 ‘민족의 태양’ 등의 표현이 무더기로 삭제된 점도 눈에 띕니다. 북한이 최근 역대 최고지도자의 우상화 선전에서 ‘신격화’를 배제하는 움직임을 반영한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헌법에 ‘핵 보유국’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남겨뒀습니다. 북한 헌법은 서문에 북한을 ‘정치사상 강국 , 핵 보유국 , 무적의 군사강국’이라고 표현된 부분을 그대로 유지한 것입니다.
이는 미-북 비핵화 협상에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미리 삭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녹취: 닉시] "We haven’t made single iota of progress…"
또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군 통수권을 명시한 102조에는 ‘무력총사령관’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등장했습니다. 개정 전에는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규정했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33조)를 국가경제 관리의 기본 방식으로 제시했습니다. 기업책임관리제라는 것은 공장과 기업소에 보다 많은 경영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일선에 있는 공장은 확대된 계획권과 생산조직권, 인재관리권, 무역과 합영, 생산품의 가격제정권과 판매권 등 10여개의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는 과거 ‘5.30 담화’ ’우리식 사회주의경제관리’ 등의 이름으로 불리던 것이었는데, 이번에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라는 명칭으로 헌법에 반영됐습니다.
이 방식은 공장과 기업소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국가의 지휘감독과 충돌하는 측면도 있다고 조한범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기업자율성이 커지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 노동당의 경제권력 독점에 부정적입니다. 시장경제가 커지면 노동당의 경제권력 독점이 약해집니다. 이는 딜레마로, 이 부분은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존 헌법에 명시돼 있던 ‘대안의 사업체계’와 ‘청산리 정신과 방법’이 삭제된 것도 이번 헌법의 특징입니다.
‘대안의 사업체계’와 ‘청산리 정신과 방법’은 1960년대 김일성 주석이 만든 것으로, 노동당과 기사장, 지배인이 협의해 공장과 협동농장을 진행해야 한다는 북한 특유의 경제건설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은 이를 각각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와 ‘혁명적 사업 방법’으로 대체했습니다. 또 ‘독립채산제’라는 표현도 사라졌습니다.
개정 헌법은 총 7장 171조로 구성돼 2016년 개정 헌법(7장 172조)보다 조문 1개 항이 줄었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명예부위원장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9월 헌법 개정에서 김일성 주석의 친동생인 김영주 등 원로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명예부위원장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이를 삭제한 것입니다.
이는 선친 대의 원로에게 부여하는 직책을 없애면서 세대교체를 사실상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인덕 전 장관은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세대교체가 된 거죠. 김영남이 나가고 최룡해에게 넘긴 것인데, 늙은이들 놔둬서 뭐하겠어요, 완전히 없앤 거지요.”
북한 헌법은 1948년 9월 제정 이래 수 차례 개정됐습니다. 중요한 개정은 1972년, 1992년, 1998년, 2009년 이뤄졌고,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네 차례나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 때라도 헌법을 바꿀 수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닉시]They have absolute power..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헌법은 김정은 절대권력을 합법화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이들은 또 북한 같은 체제에서는 헌법 위에 노동당 규약이 있고 그 위에 수령이 있기 때문에 헌법 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 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