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스포츠 이야기 전해드리는 ‘주간 스포츠 세상’ 오종수입니다. 베트남에 축구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에 우승하면서,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는데요. 베트남 전역을 휘감고 있는 흥분, 오늘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녹취: 하노이 시민 환호]
베트남은 축구 변방이었습니다. 120여 년 전, 식민지배하던 프랑스가 축구를 보급했는데요.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축구 역사는 오래됐지만,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이 없습니다.
월드컵은 본선에 나갈 수준이 안되고, 아시안컵에서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강팀들이 승점을 쌓는 대상이었는데요. 그러던 베트남 축구가 올해 들어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23세 이하(U-23)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준우승한 게 그 출발이었는데요. 이어서,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일대에서 마무리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축구 일약 4위에 올랐습니다.
동메달을 아깝게 놓친 건데요. 아시안게임 4위만으로도,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 사건입니다.
이렇게 아시아 전체에서 경쟁력을 보이더니, 지난 16일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정상에 선 것인데요. 베트남이 스즈키컵을 차지한 건 2008년 이후 처음입니다.
스즈키컵 결승 당일, 베트남 최대 도시 호치민과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함께 대표팀을 응원한 뒤, 승리를 만끽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은 베트남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수많은 인파가 ‘폭풍처럼 간다'고 해서, 현지에서는 ‘디바오(Đi가다 bão폭풍)’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인터뷰: 호치민 한국기업 주재원 유병선 씨] “(호치민 중심가에서)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국 국기를 흔들면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요. ‘디바오’라는 용어를 쓰거든요.”
베트남에 5년째 거주중인 한국 기업 주재원, 유병선 씨 이야기 들으셨는데요. 베트남 국민들의 기쁨과 감격이 낯설지 않다고 합니다. 2002년에 한국이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했을 때, 한국 대표팀이 4강까지 올라가면서 서울과 주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데요.
베트남 축구가 달라진 건, 지난해 가을 부임한 한국인 지도자 때문이었습니다. 2002년 ‘트레이너’를 맡아 한국 월드컵 대표팀을 지도했던 박항서 감독이 그 주인공인데요. 박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와 23세 이하 대표팀을 동시에 맡은 이후, 기술과 체력, 전술 수행,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호치민 한국기업 주재원 유병선 씨] “그전에는 (축구의) 인기가 많지 않았다가요. 23세 이하 축구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적이 있고요. 그러면서 베트남 국민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한국인 박항서 감독을 ‘국민 영웅’으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기간방송 VTV1은 2018년 ‘최고의 인물’로 박 감독을 선정했다고 18일 발표했고요. 박 감독을 초청해 새해 첫날 방영할 기획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방송이 외국인을 한 해 ‘최고의 인물’로 뽑은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요.
다음 날(19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경제관계 회의를 주재하면서, ‘박항서 정신을 기업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성공 표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관계자들이 전했습니다.
박 감독 때문에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가까워지고 있는데요. 주요 도시에서 펼쳐진 ‘디바오’ 거리 응원 현장에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등장했습니다.
한국 언론도 베트남 축구 승전보를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베트남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당일(16일)에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직접 축하 메시지를 내기도 했는데요. “축구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더욱 가까운 친구가 됐음을 실감했다. (두 나라가) 공생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고 인터넷 사회연결망(SNS) ‘페이스북’에 적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스즈키컵 우승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하다”면서 “저를 사랑해주시는 만큼, 내 조국 한국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호치민 한국기업 주재원 유병선 씨] “원래 베트남하고 한국하고는 문화적으로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 최근에는 산업적으로도 많이 투자를 하고 있는 시기였는데요. 박항서 감독이 이렇게 오고 나서, 축구가 굉장히 활성화되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 것이 사실입니다.”
유병선 씨도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는데요. 한국에 개인적 감사를 표시하면서, 식당에서 음식값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산 제품 판매도 늘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피로회복 음료 ‘박카스’인데요. 제품 이름을 발음할 때 ‘박항서’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인기가 치솟았다고 제조사가 설명했습니다. ‘박카스’, ‘박항서’, 정말 비슷한 것 같은데요. 업체 측은 지난 5월 박 감독을 광고에 내세워 베트남에 진출한 지 4개월 만에 280만 개를 팔았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한국산 소주 수출도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베트남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롯데’ 같은 대기업들의 현지 영업도 탄력을 받고 있고요. ‘신한베트남은행’, ‘GS25편의점’ 같은 다른 한국업체들도 최근 10% 이상 매출이 높아진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한국인 박항서 감독 지도 아래, 동남아 최강으로 입지를 다진 베트남 축구는 이제 더 큰 무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새해 초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에서 또 한 번 기적에 도전하는데요.
베트남이 아시안게임에서 기록한 4위를 뛰어넘을지, 또 베트남과 한국의 대결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두 나라 축구팬들과 국민의 관심이 높습니다.
베트남은 이란, 이라크, 예멘 등 중동국가들과 함께 D조에 속해있고요. 한국은 중국, 필리핀, 키르기스스탄과 함께 C조에 배정됐습니다.
‘주간 스포츠 세상’, 알쏭달쏭한 스포츠 용어를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는, 스포츠 용어 사전입니다. 오늘은 ‘스즈키컵’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세계대회는 ‘월드컵’이고,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아시아대회는 ‘아시안컵’입니다. ‘스즈키컵’은 이보다 범위가 더 좁은, 동남아시아 일대 축구협회들의 모임인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데요.
자동차와 중장비를 만드는 일본 회사 ‘스즈키’가 후원하기 때문에, 2008년 이래 ‘스즈키컵’이라는 대회 명칭이 자리 잡았습니다.
‘주간 스포츠 세상’, 베트남에 불고 있는 축구 열풍 전해드렸고요. 동남아시아 축구대회 ‘스즈키컵’ 명칭이 왜 붙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 들으시겠습니다. 베트남 축구에 ‘새로운 빛’이 비치고 있다고 현지 유력 신문이 지난 18일 머리 기사 제목을 달았는데요. ‘새로운 빛’, 존 메이어(John Mayer)가 부르는 ‘New Light’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VOA 방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