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임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대 쿠바 협상을 취소한다며 쿠바에 대한 관광을 제한하는 등 일부 경제 제재를 되살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인권 상황 등을 비판하면서 전임 행정부가 맺은 쿠바 제재 완화조치가 쿠바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쿠바 정권만 살찌우고 있다고 비판했는데요. 오늘은 미국과 쿠바 관계의 변천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 - 미국과 쿠바”
미국과 쿠바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가깝습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면 카리브 해 섬나라인 쿠바 수도 아바나에 도착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지리적으로 이렇게 가까운 미국과 쿠바는 반세기 넘게 서로 교류가 없었습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공식 단절한 건 지난 1961년 1월, 사실 그전까지 미국과 쿠바는 상당히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19세기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군함이 폭발한 사건이 도화선이 돼 미국과 스페인은 전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쿠바는 약 3년간 미 군정의 통치를 받게 되고, 1902년에 공식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1903년 관타나모에 미 해군 기지가 설치됐고, 쿠바의 경제 전반을 미국의 자본이 장악하는 등 독립 이후에도 상당 기간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는데요. 이후 1950년대 쿠바에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과 쿠바 사이에는 경제, 관광 등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쿠바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악화된 관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지금까지 쿠바에는 크게 3개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신생 쿠바의 첫 정권은 제라르도 마차도 정권이었는데요. 하지만 실정 끝에 반군에 의해 무너졌고, 이어 들어선 것이 플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바티스타 정권 역시 독재와 폭정을 거듭하면서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공산 반군에 의해 전복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했던 미국은 당시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에 공산 반군을 진압할 수 있도록 바티스타 정권을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이어 쿠바 공산 정권은 농지개혁법과 대기업 국유화법 등을 차례로 발표했는데요. 쿠바 대지주와 대기업의 자산은 물론이고, 쿠바에 진출해 있던 미국 기업들의 자산도 모두 몰수하면서 미국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그러면서 1961년, 두 나라는 국교를 완전히 단절하기에 이릅니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냉각 관계”
미국과 멀어진 쿠바는 당시 같은 공산국가였던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은 냉전이라는 국제적 대립 관계에 있었는데요.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쿠바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소련과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미국의 안보와 국제 전략에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아래 미국에 망명 온 쿠바인 1천500여 명을 훈련시켜 쿠바에 침투시킨 뒤,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킬 구상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으로 불린 이 계획이 실행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였는데요. 하지만 이 작전은 100여 명이 사살되고 1천여 명이 체포되는 처참한 결과를 남기고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 사건 이후로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에 대해 더욱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요. 이 기회를 틈타 소련은 쿠바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쿠바에 비밀리에 자국의 미사일 기지를 건설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곧 미국의 정찰기에 의해 발각되는데요.
[녹취: 케네디 대통령 연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과 쿠바에 미사일 기지 중단을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포하고 나서면서 전 세계는 3차 대전의 공포 속에 빠지게 되는데요. 다행히 양국의 긴박한 협상 끝에 소련은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미국은 터키에 있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더 급속히 냉각관계로 치닫게 됐는데요. 교역과 투자, 금융 거래 등 모든 경제교류와 외교 관계가 전면 중단되고 여행금지 등의 제재가 내려지면서 미국인들에게 쿠바는 반세기 넘게 갈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또 좌파 게릴라 단체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스페인 바스크지역 분리독립운동 무장단체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 소속 테러범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등의 이유로 1982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무역과 대외원조, 무기 수출 금지등의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대의 미국과 쿠바”
쿠바에 대한 미국의 봉쇄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졌는데요. 1992년에 ‘쿠바 민주화법’이 통과되면서 ‘쿠바의 민주화 이행과 인권 보장이 없이는 쿠바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으로 정했고요. 이후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 봉쇄 조치와 쿠바 출신 이민, 망명자들의 본국 송금 차단 조치까지 내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반세기 넘게 적대적이었던 양국 관계는 지난 2008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 평의회 의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계 미국인들에게 쿠바 방문을 허용하는 조처를 내리면서 양국은 화해의 첫 물꼬를 텄는데요.
그리고 지난 2015년 7월 1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미국과 쿠바 간 역사적 국교 정상화 소식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연설]
그러면서 54년 만에 미국과 쿠바는 새 시대를 열게 됐다고 강조했는데요. 이후 양국의 수도에 대사관이 다시 설치됐고, 쿠바는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습니다. 또 금수 품목이 다수 해제되고 미국 기업의 쿠바 투자를 허용하면서 미국 통신 업계와 항공, 관광 업계의 쿠바와의 공동 사업 추진도 활발하게 진행됐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양국 간 항공협정이 체결, 우편 업무 재개 등 행정부 차원에서 대쿠바 제재가 완화되면서 미국과 쿠바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바계 사회와 미국 의회 안에서는 쿠바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했는데요. 이 때문에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와 공화당 유력 인사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쿠바 유화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볼 것이라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쿠바 제재 완화정책을 되돌리려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의 쿠바계 망명자들이 많이 살아 미국 속의 작은 쿠바로 불리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리틀 아바나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연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맺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쿠바와의 협상”을 취소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쿠바 정권은 북한에 무기를 수출하는 등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쿠바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며 쿠바의 압제자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쿠바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않고 있기 때문에 관계 정상화가 어렵다는 후보 시절의 공약을 확인한 셈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대쿠바 정책을 발표했는데요. 크게 쿠바에 대한 금융거래와 여행 제한을 강화하는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 제재 강화 조치를 보면 쿠바 군부나 정보 당국과 연계된 기업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쿠바의 대표적 국영기업으로 쿠바 군부와 깊숙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에사(GAESA)와의 거래가 전면 중지됐는데요. 이 기업은 쿠바 내 상당수의 상점과 호텔, 관광, 요식업 등을 운영하면서 쿠바 경제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할 만큼 큰 기업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이후 미국의 유명 호텔 기업을 비롯한 여러 해외 기업과 공동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여행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가족 방문 등 12개 목적에 해당되는 경우 허가 없이 여행이 가능했지만, 앞으로 개인의 여행은 제한되고 단체 여행은 미국 기업이 조직하는 경우에만 허용되도록 바뀌었는데요. 이제 앞으로 쿠바에 가려는 사람은 당국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또 쿠바에서 사용한 모든 금융 기록을 5년간 반드시 남기는 조항도 여행 규제에 포함됐는데요. 이 역시 관광 자금이 쿠바 정권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당국은 새 제재안이 시행되면 지난해 약 14만여 명으로 크게 증가했던 미국인 쿠바 방문객들의 숫자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쿠바를 방문하던 미국인 여행객이 머물고 이용하던 국영 숙박업체와 운송업체, 식당 등의 수입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교회복 조치 전체를 철회하는 것은 아닌데요. 지난 2015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다시 개설한 미국 대사관은 그대로 운영될 예정이고, 미국 항공편과 크루즈 선박의 쿠바 운항도 계속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재무부와 상무부가 세부안을 마련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은 쿠바 기업과의 금융거래나 쿠바 여행이 곧바로 제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과 쿠바 관계의 변천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