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1985년 헝가리 공산당 기관지인 ‘민족 자유 신문’ 기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 신문에 보도한 한국 관련 기사 내용과 이 기사가 보도된 후 북한이 보인 반응 등을 전해드렸는데요. 당시 한국과 수교도 없었던 헝가리 언론인들이 어떻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을까요?
비록 수교는 없던 시기였지만 1985년 한국과 헝가리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985년 7월 헝가리 언론에는 유례없이 많은 한국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북한의 반발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북한은 김충일 외무성 제1부상이 직접 평양 주재 터러버 야노쉬 헝가리 대사를 찾아가 항의하기에 이릅니다.
한국이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헝가리로부터 채점판을 수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요, 당시 부다페스트 주재 북한 대사가 헝가리 외무성을 찾아와 항의한 내용과 헝가리 당국의 대책이 담겨 있는 문서를 소개합니다.
북한의 서울 올림픽 불참 요청에 대한 중국측 반응과 한국의 외교 활동 확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문서를 살펴봅니다.
서울 올림픽 유치 확정. 당시 서울은 경쟁 상대였던 일본 나고야에 비해 홍보도 미약했고, 국제 경기를 치른 경험도 부족해서 열세에 있었지만, 전방위적인 스포츠 외교를 펼친 끝에 올림픽 유치에 성공합니다.
1988년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이 열리자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해 다음 해인 1989년 7월 1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편의를 제공하면서까지 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치를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당시 기술 수준이 상당히 앞서 있었던 동독에 지원을 요청하는데요, 먼저 동독에서 물품을 보내준다는 편지에 대해 당시 북한 국가보위부가 동독의 슈타지로 고마움을 전한 편지 문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