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지난 12일부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집권 8년이 한반도에 끼친 영향을 정리하는 특집 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마지막 순서로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중 이뤄진 미국과 북한 간 민간교류에 관해 유미정 기자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지금 여러분께서는 지난 해 2월 열린 미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실황을 듣고 계신데요. 유미정 기자, 뉴욕 필이 북한 전 지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 집권 1기의 한반도 정책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취임한 지 9개월도 안돼 9.11 테러 공격을 받게 된 부시 대통령은 전임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건설적인 개입정책'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한 내 '정권교체', '선제공격' 가능성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 말기 화해 국면으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던 미-북 관계는 외교채널 뿐 아니라 민간교류 분야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진행자: 그런 경색된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뉴욕 필의 평양 공연과 같은 큰 행사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기자: 네, 그것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3년 북 핵 6자회담을 시작으로 북한과 다시 협상에 나서는 등 유화정책으로 선회했기 때문입니다. 이어 2007년 10월에는 6자회담에서10.3 합의가 발표됐는데요, 합의문에는 미-북 간 관계정상화를 위해 '양자 간 교류를 증대하고 상호 신뢰를 증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후 문화와, 체육, 그리고 민간 외교로 불리는 '트랙 2(Track 2) 외교' 분야 등 미-북 간 민간교류가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활기를 띄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2월 뉴욕 필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이 이뤄진 것이죠.
북한 측 초청으로 당시 공연을 관람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은 미-북 간 '트랙 2외교'의 최정점(high point)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한 이후 이뤄진 미-북 간 민간교류 사례들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기자: 네, 먼저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미국 순회공연이 눈에 띄는데요, 북한 시범단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 2007년 10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중부 아이오와 주의 시더 래피즈, 켄터키 주 루이빌과 남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당시 공연은 미국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는데요, 시범단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위원은 시범단 공연이 미-북 간 우정을 나눈다는 목적을 초과달성한 것 같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은 미국에서 열린 권투시합에도 참가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2007년 11월 북한 권투선수 3명이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열린 아마추어 권투 최고 권위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World Boxing Championship)'에 참가했는데요, 이 대회에서 김성국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물론 북한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최종 참가자격을 얻게 됐지만, 북한 권투선수가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구요, 이로써 미-북 간 민간교류가 좀더 활발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그 밖에도 식량난 등 북한 내부의 이유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미국 뉴욕의 민간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시라큐스대학이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석사 이상 소장학자들을 방문학자로 초청하는 프로그램 등에 관한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단순한 문화교류 차원을 넘어서, 정부 간 공식적인 외교 협상의 제약을 보완하고 비공식 채널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이른바 '트랙 2 외교' 분야에서도 굵직한 움직임이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뉴욕의 민간단체인 전미외교정책협의회, NCAFP (National Committee on American Foreign Policy)주최로 지난 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회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회의에는 6자회담의 북한 측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바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측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 그리고 미국 외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회의에 참가했던 그리어 프리쳇트 전미외교정책협의회 부소장은 당시 회의의 주 목적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북 관계를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리쳇트 부소장은 회의에서 미국은 북한 측에 '비핵화의 진정한 마무리와 지속적인 이행 연기' 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놓여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대학 부설 동북아협력대화, NEACD ( 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도 지난 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안보협의를 가졌습니다.
진행자: 부시 행정부 2기에 어느 정도 활기를 띄게 된 미-북 간 민간교류 움직임이 다음 주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인지가 관심사인데요, 전문가들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기자: 네, 오바마 행정부 출범으로 트랙 2 외교를 포함한 미-북 간 민간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북한 지도자와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등, 미-북 간 직접대화와 6자회담 등을 병행하는 '대화 중심의 포괄적 외교'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다시 박한식 조지아대학 석좌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민간교류는 앞으로 상당히 잘 될 것이고,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화도 할 것이고, 과거 7~8년 보다는 훨씬 더 길이 넓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전문가들은 민간교류가 미-북 간 핵 문제 등 현안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기대는 섣부르다고 지적합니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에도 불구하고 북 핵 협상은 검증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것처럼, 민간교류의 힘은 당장은 측정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공식 외교관계의 속도가 상호 간 이견과 경제 문제 등으로 늦춰지더라도 결국은 더 나은 관계가 수립될 것이란 믿음의 징표로 교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