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현재까지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같은 반응은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한국 정부와는 크게 다른 것인데요, 미국 정부의 태도는 미국이 북한의 정치적 혼란을 이용하려 들지 모른다는 북한 내부의 우려를 안심시키는 `신호 (Signal)'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미국 정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쏟아지는 언론의 보도들을 확인하지 않으면서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대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0일 "북한이 그들의 지도자의 건강 문제에 대해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며, 건강 이상설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도 한국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병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백악관과 국무부 등에 병세를 보고할 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싱턴에 소재한 민간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차분하게(Sense of Calmness)' 대응하는 것이 사태 진정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이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등, 상황을 자극해서 (inflame)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 정부는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클링너 연구원은 또 미국 정부는 위기감을 크게 조성하지 않고 조용히 대응하는 것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워싱턴 소재 정책연구소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존 페퍼 외교정책 담당 국장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의 차분한 반응은 북한을 안심시키는 하나의 '신호 (Signal)'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페퍼 국장은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로 파문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차분한 반응은 북한의 정치적 혼란을 미국이 이용하려들지 모른다는 북한 내부의 우려를 안심시키는 일종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페퍼 국장은 이어 일반적으로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우려 사안은 예측불가능성이라면서, 열악한 인권 기록에도 불구하고 김정일과 같은 독재자에게는 예측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이후 성향을 알 수 없는 인물이 북한의 지도자로 부상했을 경우와, 더 나아가 정권몰락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이야말로 예측불가능성을 극대화 하며, 미국은 그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은 한국 이나 중국 정부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이해관계와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중국은 대량 난민 유입과 그에 따른 인도적 구호 지원 등, 북한의 위기 사태로 인한 영향이 훨씬 더 크고 직접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안보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딘 박사는 미국은 전쟁이 아닌 북한의 사회적 위기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중국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더 적다고 말했습니다.
딘 박사는 미국은 북한에 어떤 사태가 발생하든, 또 누가 지도자가 되든 한반도 비핵화 분야에서 이뤄져온 긍정적인 활동들을 계속해 나가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며, 군사적 도발을 막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조용한 (low-key) 외교를 통해 지금까지 이뤄져온 활동들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딘 박사는 설명했습니다.한편,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차분한 반응을 보이면서 동시에 북 핵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앞서 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한 보도와 관계 없이 미국의 관심의 초점은 6자회담의 성과에 있다며, 미국은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존 페퍼 국장은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과 관련해 신중하고 차분한 대응을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이뤄온 북 핵 협상의 성과를 위기로 몰고가지 않으려는 의도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는 강력한 발언이나, 세습 또는 후계 구도와 관련한 추정 등 자극적인 행동으로 현재 불꽃이 사그러든 모닥불과 같은 북 핵 협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페퍼 국장은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