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대북 지원 품목을 제재 면제 대상으로 잇따라 지정해도 북한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제재 면제 기간이 속속 만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원 단체들은 북한의 수용만 기대하며 같은 물품에 대해 거듭 면제 기간 연장을 신청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8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인도지원을 목적으로 제재 면제 승인을 받고 진행 중인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의 대북 사업은 모두 23건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 70%인 16건은 이미 제재 면제 기간이 만료돼 연장을 받은 사업입니다.
현지 직원의 업무 수행을 위해 자동차 두 대와 엔진 부품 등을 지원하는 유엔인구기금(UNFPA), 위생과 깨끗한 식수 제공 사업을 계획한 유엔아동기금(UNICEF, 유니세프), 북한 내 영양실조와 식량 문제 대응하는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난달 말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예방과 통제, 결핵 진단, 소속 직원의 북한 내 안전한 현장 임무 수행을 위한 물품 지원 등과 관련해 총 4건에 대한 제재 기간 연장 승인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제재위는 해당 단체들이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 조치와 운송 어려움으로 당초 제재 면제 만료일 내에 물자를 북한에 반입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면제 기간 연장을 승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유엔의 제재 면제를 받고도 북한의 국경 봉쇄 때문에 북한에 전달되지 못한 물품은 신종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의료 기구에서부터 응급 분만과 신생아 치료에 필요한 인큐베이터, 백신 보관 냉장고, 병원 건립에 필요한 건축자재와 농기구, 자동차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들 대북지원 물품들이 연장된 제재 면제 기간 내에 북한에 반입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를 막기 위해 실시한 국경 봉쇄를 2년 넘게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재위로부터 한 차례 면제 기간 연장을 받은 핀란드의 비정부 기구 ‘핀란드 교회원조기구’(FCA: Finn Church Aid)는 8일, 대북지원 물품 반입 계획에 대한 VOA 서면 질의에, “아직 계획 단계에 있으며, 현재 새로운 정보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국경이 여전히 닫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FCA 대변인]”FCA is still at planning phase and we have currently no updates. DPRK borders remain closed.”
이 기구는 지난 2020년 6월 24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로부터 북한 내 취약 계층 아동에 대한 식량 지원과 재난 대응 능력 향상 사업을 위한 지원 물품과 운영비 사용을 승인받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국경이 닫혀 제재 면제 기간 내에 관련 물자 등을 반입하지 못하자 연장을 요청해 올해 12월 14일까지 반입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습니다.
북한 내 결핵 퇴치 사업을 벌이는 미국 내 한 구호단체는 8일 VOA에 “올해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에 면제 기간 연장을 신청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두 차례나 면제 기간을 연장한 이 단체는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북한 국경 상황에 아무 변화가 없다면서, 외교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여전히 엄격한 코로나 대응 지침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북한주재 해외 공관과 대사관이 여전히 문을 닫았고, 현지에는 국제기구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재위는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른 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7일 ‘제재와 인도적 영향을’ 주제로 열린 회의에서도 이 점이 부각됐습니다.
로즈마리 디칼로 유엔 정부평화구축국 사무차장은 북한이 인도주의 제재 면제 조치를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2017년 이후 전체 제재 면제 요청 100건 가운데 85건을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문제 때문에 면제 기간도 연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로 농기계와 의료 장비 등의 수입이 크게 제한돼 북한 내 식량난과 의료 상황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 정권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자초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안보리가 지난해 12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대북제재 위원회 브리핑을 통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품을 보내는 데 있어 첫 번째 걸림돌은 국제사회 제재가 아닌 북한의 자체적인 국경 봉쇄라는 사실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미 국무부도 줄곧 북한에 외부 지원을 가로막지 말라며 북한의 폐쇄적 방역 실태를 지적해 왔습니다.
지난달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VOA에 북한의 엄격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이 국제사회의 원조 전달 능력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북한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미국과 국제 원조, 보건 기구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독려한다고 밝혔었습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7월에는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고 국제적 구호 제안을 거부함에 따라 원조 전달에 심각한 장벽을 만들었고 동시에 기존의 인도주의 사업의 이행과 감시를 담당하는 인력 또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